그런데 정말로 사과보다 빅맥이 몸에 더 좋을까.
규희님의 사과보다 빅맥이 몸에 좋다? 로 트랙백



사실 영양소를 따져보면 사과보다 빅맥이 더 풍부한 건 엄연한 사실이다.

사과는 단순히 하나의 과일로서 당류와 비타민C, 일부 미네랄과 섬유질 등을 함유할 따름이지만,
빅맥에는 빵, 치즈, 고기, 토마토와 야채, 마요네즈 등 다양한 식료품이 혼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당류와 섬유질은 물론이고 훨씬 다양한 종류의 비타민(그 중에는 육류나 낙농제품에서
주로 섭취될 수 있는 것도 있다), 그리고 미네랄과 아미노산, 지방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빅맥에 사과보다 더 다양하고 풍부한 영양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것만 보고 사과보다 빅맥이 몸에 좋을것인지 여부를 논하기 충분할까.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스티브 잡스가 창업하던 시절에 "싸고 영양많은" 사과만 사먹다 하도 질려서 한입 베어물고 내버린
사과가 마구 굴러다니던 작업장에서 "애플"컴퓨터와 그 유명한 사과 로고를 탄생시켰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전해내려오고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과는 그것만 가지고 끼니를 때우는 식품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물론 콜라와 감자튀김을 곁들이긴 하지만) 빅맥은 그것만 가지고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식품으로서 섭취된다. 빅맥에다 밥이랑 다른 반찬을 차려놓고 "빅맥정식"을 먹는 경우는 없을 테니까.

따라서 음식물이 "해로운가"에 관해 논할 때 그 음식물 자체에 어떤 분자들이 들어있는지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음식물이 해롭거나 혹은 이롭기 위해서는 섭취되어야 하는데,
그 섭취되는 양상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사과가 "부실한" 영양성분에도 불구하고 해롭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사과로서 섭취"되기 때문이고,
빅맥이 상대적으로 더 "풍부한" 영양성분에도 불구하고 더 해로울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빅맥으로서 섭취"
되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그 양상을 탐구하는 것은 분자생물학의 영역이 아닌 사회학의 영역으로 될 것이다.

섭식과 영양에 관한 주장들이 "엄밀한 과학"이 되기 힘든 이유가 바로 그런 점이 아닐까.


by shaind | 2008/09/28 21:57 | 트랙백 | 덧글(4)
그게 단지 개그였을 뿐일까 - 청동 도구
史官論也님의 [아아. 티안무 , 이땅에 개그를 전파해주시는 개그계의 제독이시여,]로 트랙백함.




티안무라는 분의 실수에서 비롯된 약간의 검색질의 [결과물↓]


"필화"의 발단이 된 티안무라는 분의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티안무라는 분은 나중에야 실수를 깨달았다.)





요즘은 이과에서는 국사를 안 가르치는지 모르겠는데, 저(82년생)이나
저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들은 국사가 문/이과 과정을 불문하고
공통과목이었죠. (수능도 쳤습니다.) 그래서 국사교과서가 청동기시대의
농기구 및 일상 도구는 신석기시대와 마찬가지로 목기, 골각기, 마제석기였고,
이는 청동이 농사 도구로 쓸 만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며
청동기는 무기, 제기, 장신구 등에 국한된다고 서술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건 일종의 "상식"이죠.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농기구인 반달돌칼




그런데 대개 상식이 그렇듯이 그 상식이 과연 전적으로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정말로 청동기 시대의 금속이란 농사 같은 일상생활과는 인연이 없는
사치품이나 무기 이상의 의미가 없었던 걸까요?



최근에 "북방유라시아대륙의 청동기문화" 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 상식에
도전하는 것 같은 서술을 발견해서 인용해봅니다.


인류가 처음 접한 금속은 구리였으며, 구리는 돌, 뼈, 나무에 비해 탁월한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로 구리에는 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소성(plasticity), 즉 구부리고
펼 수 있는 성질이 있다. 구리의 그 같은 특성은 단련을 통해 매우 가늘고
예리한 도구를 만들 수 있게 하였다. 구리로 만든 바늘, 송곳, 낚시바늘,
칼 등은 돌이나 뼈로 만든 것에 비해 훨씬 발전된 것이었다. 둘째로 구리에는
가용성(可溶性;fusibility), 즉 녹여서 주조할 수 있는 성질이 있다. 구리를 녹여
돌로서는 만들 수 없는 새로운 모양의 도끼, 괭이, 자귀 등을 만들 수 있었다.
셋째로 구리로 만든 도구는 견고성(hardness)에서도 높은 효율성을 지녔다.
이와 같은 성질의 구리로 만든 칼, 도끼, 자귀, 끌, 천공기(송곳), 망치 등과
같은 도구는 생산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구리로 만든 도구는 자르고, 베고,
쪼개고, 깎고, 천공하는 작업속도가 석기보다 훨씬 빠르다.
(주1 : Рындина Н.В., 1978, К проблеме классификационного
членения культур медно-бронзовойэпохи
// Вест. Моск. Ун-та. Сер. История. No.6 p.74 )


예를 들어 레닌그라드의 S.A.쎄묘노프는 앙가라 강 유역의 타이가에서 구리
도구와 돌 도구의 생산력에 대한 비교 실험을 행한 바 있다. 실험 참여자는
모양이 똑 같은 구리도끼와 돌도끼로 두께 25cm의 소나무를 찍어 잘랐다.
그는 돌도끼로는 75분, 구리도끼로는 25분만에 소나무를 찍어 넘어뜨렸다.
구리도끼는 돌도끼에 비해 3배가 더 효율적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르는 도구의
생산력도 비교하였다. 구리칼과 돌칼로 나무의 옹이를 깎았을 때에 전자가
후자에 비해 6~7배는 빨리 일이 마무리되었다. 한편 자작나무를 천공하였을
때에 구리 천공기는 규석제 천공기에 비해 22배나 빨리 천공을 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주2 : Рындина Н.В., 1983. Человек у истоков металлургических знаний
// Путешествия вдревность. МГУ. pp. 206~208 )



정석배, "북방유라시아대륙의 청동기문화", 학연문화사, 2004, pp.19~20



저자와 저자가 인용한 연구를 수행한 (소련)고고학자들은 아마 청동 도구가
일상 생활의 생산활동의 효율 증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저자는 러시아에서 시베리아 이서의 중앙아시아 반유목민족의 청동기
문화를 주로 연구한 사람이고, 저자가 영향받은 러시아 학자들은 또한
공산주의적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서술이
의미하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여도 좋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물론 위 인용문에서는 여러가지 일상생활 도구를 언급하고 있지만, 앞서의
티안무라는 분과 관련된 논쟁에서 주로 언급된 농기구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습니다. 그래서 과연 청동 농기구라는 게 실존하는지 알아보려고
약간 웹 검색을 해봤습니다.




맨 섬 박물관(Manx Museum)에 전시된 청동낫
(http://www.gov.im/mnh/collections/archaeology/bronzeage/bronzesickle.xml)






하조르 박물관에 전시된 청동낫
©Tim Bulkeley, 2002-4, Tim Bulkeley. All rights reserved.
(http://ebibletools.com/israel/hazor/DCP_0785.html)






아일랜드 나반에서 발견된 청동낫
James Finnigan (c) Dorling Kindersley
(http://www.dkimages.com/discover/Home/History/Archaeology/Artefacts/Artefacts-046.html)






영국과 에이레에서 발견된 청동 도구들
(http://home.comcast.net/~rlaurio/BritishMuseum01.html)
낫이 확실히 식별되고, 그 외에도 무기나 장신구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좀 있군요.




의외로 청동으로 된 낫은 제법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하긴 낫과 칼 같은 무기류와 상당히 근연관계가 있는 도구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네요.
이집트에는 코페쉬(낫으로부터 진화된 등이 굽은 칼) 같은 것도 있었고 말이죠.


한편 청동을 사용한 쟁기도 있긴 했던 것 같습니다.
쟁기 정도면 완전한 농기구라고 부를 법도 하죠.


청동 슈를 박은 고대 이집트 쟁기
(http://nefertiti.iwebland.com/farming/index.html)


출처 사이트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

나무 쟁기는 소 한쌍의 뿔에 매였다. 그 쟁기는 토양을 완전히 갈아엎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볍게 만들어졌다. 그렇긴 하지만, 때로는 위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청동으로 슈(shoe)를 박기도 했다.
/*서양에서 무거운 흙을 파 뒤집어 치울 수 있는 대형 쟁기가 나타난
것은 중세에 들어서의 일이고, 그 이전까지는 표면의 가벼운 흙을 "긁어서"
고랑을 내는 가벼운 쟁기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그 외에 잡다한 것들 :

http://en.wikipedia.org/wiki/Aratrum
고대 그리스에서 쟁기에 청동을 사용하기도 했다는 언급이 포함된 위키페디아 항목

http://www.neolith.or.kr/down/nonyyekaogo3.hwp
"상주(商周) 시기에는 중경(中耕) 기술을 생산하여 중경 농구가 출현하였고
아울러 청동 농구도 발명하였다."
"...상주 시기의 정지 농구에는 새로이 청동으로 만든 부삽, 괭이와 삽(鍤)
및 쟁기가 추가되었다."

(진문화, "농업고고", 한국신석기학회 안승모 번역)






물론 저도 청동기시대에 쟁기나 다른 정지 농구의 날을 청동으로 만드는 것은
아마도 예외적인 사례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쟁기와 청동기
사이의 관계에는 쟁기날의 소재가 청동이었는지 여부 외에도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금속제품의 사용은 노동 생산력을 증가시켰을 뿐만 아니라 여러 생산
부문의 기술적 가능성도 확대하였다. 구리로 만든 도끼, 자귀, 끌, 톱,
못, 꺽쇠 등은 목재를 정교하게 가공할 수 있게 하여, 그 덕분에 건축술과
건물내부 장식기술이 발전하게 되었고, 목제의 보습과 바퀴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바퀴가 처음 사용된 곳은 금속제품이 사용되었던
지역이었다. 바퀴는 이동과 수송을 용이하게 하였고, 나아가서는 물레
(주3 : 물레는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기원전 5천년기 말 ~ 4천년기 초에,
중앙아시아에서는 나마즈가 IV - 기원전 3천년기 - 에 나타난다)의 발명을
가능하게 하였다. 나무로 만든 보습과 멍에가 구리로 만든 도구와 함께
출현하는 점은 쟁기농경이 구리의 발견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한다. 구리와 청동으로 만든 도끼는 삼림을 정복하여 새로운 땅을 개간
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정석배, "북방유라시아대륙의 청동기문화", 학연문화사, 2004, p.20



쟁기 농경은 청동의 등장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었다는 것과 함께,
설사 단순히 목재로 만들어진 쟁기라 할지라도 그 등장에 있어서
청동 도구라는 배경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인용한, 같은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사례들을 보면, 쟁기가 등장
하려면 청동 도구가 있어야만 했거나, 적어도 청동 도구가 쟁기 제작자
에게 큰 혜택을 주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돌칼로 나무를 깎아
쟁기를 만드는 것보다는 청동 칼이 훨씬 용이했겠죠.

비슷한 이야기로, 수레바퀴는 청동이 아닌 나무로 만들어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청동기라는 기술적 배경이 없이는 나오기 어려웠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청동과 같은 중요한 기술적 전환점이 되는 소재는, 설사 청동 자체가
자원상의 한계로 특정 도구에 사용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종의 기술적
배경 혹은 밑바탕이 되어 그 도구를 구성하고 있던 기존의 소재에도 더
많은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할 근거는
있어보입니다.




동과 그 합금이 기존의 재료에 비해 매우 큰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후대에 등장하는 철과 비교해서)상대적으로 귀한 금속이기 때문에
농기구나 일상 도구로 널리 사용되기에 불리하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쨋든 청동기 유물이 주로 제기, 장식품, 무기류에
치중되어 있다는 것과, 금속제 농기구의 일반화는 철기 시대에 이루어진
것은 널리 인정되는 사실이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재료의 희귀성 면에서의 약점과 재료의 성질 면에서의 장점이 어느정도
상계된다고 할 때, 금속(청동)제 농기구가 만들어지느냐 아니냐의 선택은
부대상황이나 다른 요소들에 따라 유동적인"정도의 문제"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종실록에도 "동랍(銅鑞)은 우리 나라에서는 나지 아니하옵기로..."라는
언급이 있듯이, 우리나라는 비교적 동의 산출량이 적은 편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금속 농기구의 사용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청동기시대 동광의 주요 산지와 같이 동을 상대적으로 쉽게 얻을 수
있는 지역의 경우라면 저울추가 반대편으로 기울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신소재, 특히 석재로부터 금속으로 이행하는 것 같은 거대한 기술적 혁신이
그 사회의 생산력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법하지 않은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직접 그 소재가 어떤 분야에 사용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떤 신소재의 사용은 그 시대를 구분짓는 이름이 될 정도로 - 청동이 다른
재료보다 별로 많이 사용되지 않았음을 알지만 우리는 그 시대를 청동기시대
라고 부르죠 - 중요한 시대적, 기술적 배경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티안무라는 분이 쓴 글이 세부적으로 실수를 하긴 했지만
큰 틀에서 볼 때 "개그"취급당할 만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by shaind | 2008/08/28 21:29 | 잡생각과 뻘짓 | 트랙백(1) | 덧글(8)
인상적이었던 한 구절

...어느 것이 가장 공평한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으며,
경제 이론도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평성은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제 눈에 안경이기 때문이다.

그레고리 만키우, "Principles of Economics" 한국어판, 12장(조세제도) pp.299



여담이지만, 이성과 합리와 과학의 기본 바탕은 객관인데 반해
많은 분야에서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주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이성의 가장 기본적인 대응방식은 그것을 "배제"하는 것인데,
그러한 대응이 항상 시의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다.
(최근의 모 검역소 "필화"사태 같은 것도 있었지만...)
by shaind | 2008/08/27 00:23 | 본 것과 들은 것 | 트랙백(1) | 덧글(1)
블로그에 배경음악 넣기

간만에 하는 개인적인 푸념인지라 [보기 싫으시겠지만 ↓]





블로그에 배경음악을 넣는 사람들이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음악을 다른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숭고한 마음을
이해못하는 건 아니다. 사실 나는 음악을 남에게 들려주고 소개시켜주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배경음악의 문제는 블로그 페이지가 뜨자 마자 갑작스럽게 음악이 튀어
나온다는 것이다. 특히 마구 때려부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음악이라던가 대책
없이 칠랑팔랑하는 노래들이 더 그렇다. 음악은 그것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귀에게만 음악이 되는 법이 아닌가.

그건 그래도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쨋든 나는 음악을 좋아하니까 말이다.
블로고스피어를 돌아다니다 음악을 새로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어쨋든 좋다고 하자.


여기서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이미 다른 음악을 듣고 있을 때다.
나는 림프 비즈킷의 "Full Nelson"도 좋아하고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도
좋아하지만, 둘 다 동시에 듣는 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 협화음은 불협화음이
되고 규칙은 불규칙이 되며 의미있던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물론 게중에는 "텔미스핀"이나 "빠삐놈"처럼 놀랍게 잘 어울리는 것들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한가지 위안은 내가 embed 된 음악플레이어의 정지버튼을 눌러서
곧바로 음악을 끌 수는 있다는 사실이다. 어쨋든 그런 불쾌한 경험을 과거로
밀어낼 수는 있으니까.

그런데 이걸 막음으로써 더 나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음악을 블로그에 embed 시키면서 width=0 height=0 속성을
부여해서 플러그인 플레이어가 아예 보이지 않도록 해버린다. 이렇게 하면
그 웹페이지를 닫지 않는 한 아예 음악을 끌 수조차 없는 것이다.

이건 "내 블로그를 읽으려거든 무조건 이걸 들어라" 는 것과 같다.

그 음악은 그렇게 해야 할 정도로 좋은 음악이었던 것일까?
이건 진리의지에 버금가는 권력의지의 또다른 발현인 것인가?



그런데 심지어 그보다도 나쁜 것이 하나 더 있다.


"귀하의 블로그의 배경음악을 끌 수 없어 포스트를 읽으려고 할 때 곤란합니다.
embed 시킨 플레이어를 보이게 해서 음악을 끌 수 있게 해주세요."

라는 식의 요청을 하면

"ESC를 누르세요"

라는 답변을 하는 사람들이다.


...ESC를 눌렀을때 재생중이던 미디어 플러그인의 재생을 멈추는 건
웹표준도 뭣도 아니고 그냥 인터넷 익스플로러 에서만 되는 기능이다.

나는 블로그를 돌아다닐 때 파이어폭스를 이용한다.
아마 그런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저런 답변은 사실 이런 것과 다름이 없다.




"뭐 병시나 싸울래?"








......사실 저런 사람들은 소박한 정신의 소유자들이라서, 대부분은 "인터넷이란 내가
쓰는 브라우저(즉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의미하는 것"인 고로 ESC를 누르면 음악이
꺼지는 게 당연하고 그렇지 않은 브라우저를 사용하는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며, 단지 블로그 스킨의 모양새와 잘 맞지 않아서 별 다른 생각
없이 그냥 뇌입원 검색창에 뜬 어느 태그 강좌에 나온 대로 width(너비)와 height(높이)
를 0으로 만들어버린 것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박한 정신의 소유자인 그들은 그 좋은 음악을 끄고싶어할 누군가가
있으리라는 것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이고, 블로그 페이지를 열자마자 쏟아져
나오는, 자신에게는 이미 친숙해진 음표 더미에 놀라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것도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혹은 애초에 자신이나 자신의 친구 외에 자신의 블로그에 들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시절(나모 4.0으로 만든 웹페이지를 하이홈에 업로드하던 시절)에 정보산업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홈페이지 만들기 숙제를 내 주셨을 때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웹페이지는 내가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보기 위한 것.




by shaind | 2008/08/14 23:46 | 잡생각과 뻘짓 | 트랙백(5) | 덧글(55)
설정 덕후 움베르토 에코

미스트님의 [설정이라는 것이 그렇게 가볍게 보이나?]로부터 트랙백함


이 글을 보자 왠지 설정 덕후 움베르토 에코가 자신이 어떻게 "장미의 이름"
이라는 걸작을 썼는지에 관한 기록을 본 것이 생각나서 [인용해봅니다.↓(펼치기)]





(전략)......무슨 말인가 하면, 소설을 쓰려고 할 때 작가는 가능한
선까지, 그리고 가능한 한 자세히 소설이라는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뜻이다. 내가 강을 그리고자 한다면 먼저 두 개의 둑을 창조할 필요가
있다. 만일에 왼쪽 강둑에 낚시꾼을 하나 세우고, 이 낚시꾼에게
강퍅한 성격과 전과 기록을 부여한 뒤에야 쓰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말하자면 나는 이로써, 이와 관련된 필연적인 일들을 언어로
번역하기만 하면 되는 것
이다.

(중략)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소설의 세계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소설의 세계를 구축해 놓으면 언어는 거기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Rem tene, verba sequentur, 즉 "주제를 붙잡으라, 그러면
언어가 뒤따라온다"인 것이다. 시의 경우는 Verba tene, res
sequentur, 즉 "언어를 붙잡으라, 그러면 주제가 뒤따라온다"

소설의 집필을 시작한 첫 해를 나는 바로 이 소설의 세계를 구축하는
작업에 바쳤다. 중세 자료가 소장되어 있는 도서관에서 발견될 수
있는 방대한 서명 목록을 뒤적거리는 일도 거기에 포함된다. 이어서
나는 등장인물이 될 만한 무수한 사람들의 인명과 성격의 자료까지
준비했다. 물론 이들 중의 상당수는 소설에서 제외되었다. 말하자면
나는,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 주변의 수도사들에 관한 자료까지
마련해야 했던 것이다. 독자들은 그들이 누군지 알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어야 한다.
소설의 등장인물에 관한 연구가 그
정밀함을 도시와 겨룰 수 있어야 한다고 했던 게 누구던가? 그렇다.
소설은, 심지어, 도시의 설계도와도 겨룰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
역시 수도원의 건물을 제대로 배치하기 위해 각 건물 간의 거리를
정하고, 심지어는 나선형 계단의 계단 수를 정하기 위해 건축학
연구에 몰두했는가 하면 건축 백과 같은 책에 나오는 사진과 바닥
그림을 일일이 조사했다. 내 소설에 나오는 대화의 길이는 대화에
허용된 시간과 정확하게 일치하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편주 : "장미의 이름" 영화를 만든 장 자끄 아노 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가령 두 사람이 식품 저장고에서 회랑까지 걸어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경우, 나는 대화의 길이와 시간의 길이를
정확하게 계산하면서 말을 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적지에
이를 만한 시각에 그들의 대화도 끝나는 것이다.

세계 창조의 작업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제약 조건을 만들어 심어둘
필요가 있다. 시에서 이런 제약 조건은 음률, 각운, 율동의 형태로
시 속에 자리를 잡는다. 이것이 이른바 "듣는 귀를 위한 운문"(Poetry
New York 3 [1950] 에 실린 찰스 올슨의 투사 시[Projective
Verse]를 참고할 것) 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주변
세계가 제한 조건이 되어 준다. 이것은 (비록 리얼리즘을 설명해
주기는 하지만) 리얼리즘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따라서 전혀
비현실적인 세계, 가령 나귀가 하늘을 날고, 죽었다가도 키스 한
번으로 되살아나는 왕자가 나올 수 있는 세계이다. 그러나 순수하게
가능한 세계, 비현실적인 세계라고 하더라도 소설로 존재하려면
처음에 정의된 구조에 따라야 한다.
(우리는 먼저, 그 세계가 왕자의
키스 한 번으로 공주가 되살아날 수 있는 세계인지, 공주의 키스가
개구리, 혹은 아르마딜로를 왕자로 변하게 할 수 있는 세계인지를
알아야 한다)

내가 창조한 소설 세계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사이다. 내가 중세의
연대기를 읽고 또 읽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중세의 연대기를
읽으면서 나는 모름지기 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애초에 작가의
머릿속에 없던 것, 가령 청빈을 둘러싼 논쟁, 소형제회 수도사들에
대한 이단심문관의 적의 같은 것도 소설 안으로 껴안아 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 열린책들 2002




넵 설정덕후도 이만저만이 아니죠.


2002년에 이 책을 읽었을 땐 움베르토 에코가 실은 덕후가 아닐까 하고 의심했는데,
최신작"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을 읽고 나니 그 의심이 거의 사실로 확인된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에코 덕후인 저로서는 좀 즐거웠습니다. (뭔가 틀려!)








by shaind | 2008/08/04 15:54 | 본 것과 들은 것 | 트랙백(1) | 덧글(6)
소녀섹트 OVA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

10년래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백합 성인 만화 라는 소리도 들은 소녀섹트가 OVA로 나왔습니다.
당연히 백합 덕후(...)인 저는 잽싸게 구해다 봤습니다.

[감상↓ ※스포일러, 스크린샷 등 다수 포함]










야애니 신작 하나 나왔네요(...)




......뭐, "야망가가 원작이니 야애니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라고 생각해버리면 편하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만화 원작 "소녀섹트"는 최소한 두 가지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이걸 단지 레즈들이 나와서 헉헉하는 장면으로 가득찬 (남성향)야망가로 읽어버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캐릭터들 간의 복잡하고 심리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소녀틱"하게,
결과적으로는 "백합적"으로 읽을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었습니다.

일단 원작만화는 전자와 후자의 비율이 대략 6:4 정도로 그나마 어느정도 백합물이라고 불러줄 만한
여지가 있다고 하겠습니다만, 이건 뭐 대놓고 (남성향)야애니로 만들자고 작정한 듯한 화면을
보여주고 있네요. (5분마다 한번씩 H씬이 나온다고 일컬어지는 에로도 과포화상태야 뭐
원작부터가 원래 좀 그랬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백합물(중에서도 특히 에로도가 높은 백합물)은 장대 사이에서 밧줄을 타고
건너가는 줄타기 광대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등 뒤에는 순정만화가 있고, 앞에는 (레즈비언)퀴어가 있죠.
그리고 자칫 발을 헛디디면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註]
이 비유가 어디서 나오는지 아시는 분은 그냥 관대하게 보아넘겨주세요(ㅌㅌㅌ)


물론 바닥에는 남성향 레즈물이 있죠.
이것에 대해서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남성향 레즈물이란 근본적으로 "남자가 생략된 덮밥(업계용어)"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녀섹트 OVA는 어느쪽이냐면, 벌써 한 발이 빠져서 휘청 한 상태라고 보면 되겠네요.


...여튼 일단 OVA 1화가 그렇다는 거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긴 합니다만
현재까지로 봐서는 아무래도 답이 업ㅂ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가 좀 부정적인 이야기고,

그래도 최소한 원작의 지리멸렬한 전개(에피소드들이 너무 중구난방으로 등장하는)를 어느정도
정리해서 보여주려고 한다는 점은 괜찮게 평가할만합니다. 원작의 (H씬으로 결론이 나긴 하지만)
여러 곁가지 에피소드들도 가급적 적절한 위치에 잘 챙겨넣으려고 한 것 같고, 메인 스토리는
한다 시노부와 나이토 모모코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 두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시켜 나간다는 방향을 잡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H씬에 너무 집중하느라 원작의 작은 재미거리들을 좀 흘려버린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군요.




이하 애니 중 일부 스크린샷.




원작에는 없었던 미술실 에피소드.





"말을 하면 마법이 풀려버려."

원작에서도 워낙에 뜬금없이 나왔다 사라진 우타노-치카에 커플......
아예 전설로 처리해버렸군요. 그나저나 원래는 우타노가 사라져버리는 거였는데
애니에서는 어울리지 않게 치카에가... (뭐, 전설로 처리되면서 맥락이라던가
캐릭터라던가 그런 건 다 사라졌으니 어느 쪽이 사라져버리든 사실 상관없긴 합니다만)




원작의 코믹한(...) 요소를 비교적 잘 유지한 치즈루의 상담





"왕자님의 키스"

마야가 한다 시노부에게 걸려드는 이야기는 원작을 어느정도 따르긴 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냥 겉핥기 식으로 따라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더해서 개인적으로는
"내 입술이 마음에 드냐고 물었어." "네...전 한다씨의 입술이 정말로 좋습니다." "좋아!"
이 부분이 빠진 게 좀 마음에 안들기도 합니다.





"계기"

사실 이건 원작에서는 맨 나중에 나온 장면인데, 아무래도 시노부가 모모코를
좋아하게 되는 동기가 부족해서 나중에 첨가된 것 같은 인상을 풍겼습니다.
원작에서는 회상 씬으로 처리해서 좀 스토리를 다듬었다는 느낌이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용과 별 상관없는 배경음악에 관한 이야기.

소녀섹트는 (아마도 귀차니즘 혹은 예산부족의 결과로) 클래식을 상당히 많이 썼는데
선곡 센스가 그다지.........좋다고는 못하겠네요. (클래식 덕후 근성)




작곡자 미상, 나르치소 예페스 편곡, "로망스"


"금지된 장난" 영화로 알려진 곡이죠. 덕분에 뭔가 어울릴 것 같긴 한데 아무래도
H씬에 나올 만한 음악이라는 느낌은 아닙니다.



요제프 및 요한 슈트라우스 작곡, "피치카토 폴카"


유명하고 재미있는 곡이죠. 이건 무난하다는 느낌.



루트비히 판 베토벤 작곡, 피아노 소나타 14번 Op.27-2 제1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시쳇말로 "격뿜"했습니다.
뭐랄까 일단 배경이 밤이라서 월광 소나타를 생각해낸 모양인데
사실 월광 소나타는 너무 차분해서 저런 장면에는 안 맞단 말입니다......




안토니오 비발디 작곡,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4번 바단조 RV297 제3악장 알레그로


선곡 덕택에 원작과 분위기가 확 바뀌었습니다. 원작에서 이 장면은
한다 시노부가 반쯤 장난치듯이 하는 분위기였는데, 여기서는 이 곡 때문에
분위기가 너무 심각해졌다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의도적이었을지도.




루트비히 판 베토벤 작곡, 피아노 소나타 8번 Op.13 제 2악장 아다지오 칸타빌레


......위에서 말한 "월광"의 센스를 능가하는 괴악한 선곡입니다.
아예 분위기랑 배경음악이 따로 놉니다.
(누군지 몰라도 이 장면에 이 곡을 넣을 생각을 한 놈은 좀 맞자.)




프란츠 리스트 작곡, 피아노 "위안" 3번 S.171a


...솔직히 리스트를 들을 만한 귀가 없어서 이게 얼마나 어울리는 배경음악인지
판단은 못하겠군요. 일단은 무난한 것 처럼 들립니다.



일단 여기까지......




Post Script :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소녀섹트 애니를 만든 곳이 "milky"라고 하네요.
좀 유명한 야애니 제작사라고 합니다......OTL





by shaind | 2008/07/30 20:18 | 본 것과 들은 것 | 트랙백 | 덧글(4)
꿀벌의 꼼수


교정에 댕강나무(아벨리아) 꽃이 만개하였으므로 [사진을 좀 찍었습니다.↓]


[이하 사진들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댕강나무 꽃이 예쁘네요.
(이름이 좀 그렇긴 하지만)



여튼 꽃이 있으면 마땅히 곤충이 있기 마련이죠.





넵 꿀벌


요새 각종 전파 때문에 보기 힘들어졌다는 괴담이 돌고 있는 꿀벌 되겠습니다.
(워낙 사진을 못 찍어서 촛점같은 건 야반도주했습니다 -_-)


보통 꿀벌이 꿀을 모을 때는 직접 꽃 안으로 기어들어가서
꿀을 빠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그러면서 꽃가루를 수분해주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꿀 따기의 "정석"



그런데 사실 댕강나무 꽃은 깔대기처럼 중간에 갑자기 좁아지는 부분이 있고,
벌의 목표물인 꿀은 그 안쪽 깊숙한 곳에 있어서 닿기 어렵습니다.





왠지 힘들어보이는 꿀벌



이렇게 댕강나무 꽃에서 꿀을 모으기 어렵기 때문에, 꿀벌들은 다른 꼼수를 찾아낸 것 같습니다.





벌이 저기서 뭘 하는 걸까요?








벌들이 저기서 하고 있는 일은......






넵 꼼수












꿀벌들은 댕강나무 꽃 아래쪽에 구멍을 뚫고 꿀을 빨고 있었던 것입니다.

꿀벌들이 이런 "꼼수"를 쓴 흔적은 도처에서 쉽게 발견되었습니다.






꽃잎 아래쪽에 뚫린 구멍에 주목



















......꿀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면의 상징이긴 한데 그 근면에도
항상 꼼수가 포함되어 있긴 있었던 모양입니다.





꿀은 품위있게 마셔야지.





아니면 애초에 "정석"이란 것 조차 능력있는 자가 누릴 수 있는 사치에 불과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꼽사리










by shaind | 2008/07/26 20:54 | 본 것과 들은 것 | 트랙백 | 덧글(4)
영화 "놈놈놈"은 반드시 대박친다.

영화 "놈놈놈"은 반드시 대박친다. [왜냐하면...↓]
.



http://bluestsky.egloos.com/4497374
http://nom3.lil.to/
http://ladywitch.egloos.com/1785497
http://rcha.egloos.com/603494
http://hallop.egloos.com/4499116
http://blog.naver.com/skyzzang269/50033371871
(기타등등)


다름아닌 "그분들"을 낚았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뷁만파워는 경기침체에도 굴하지 않고 "왕의 남자" 신화를 이어갈 것이라 믿는다. 화이팅!






여담1.

개인적으로 영화는 캐릭터에 치중한 것 같긴 하지만 캐릭터만으로도 이미
다른 결점들을 충분히 커버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윤태구

[System]"좋아하는 우리나라 배우 목록에 송강호를 추가하였습니다."




여담2. 누구든 서부극(정통이든 스파게티든)에 좋은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두시간동안 웃으면서 보기에 충분한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제목부터가 석양의 무법자 패러디...


여담3. (밀덕후의 관점에서) 영화에 나오는 일본군 기관총은
저 "씬 레드 라인"에도 나와서 유명해진 호치키스 기관총을 재현한 것 같았다.
(휙휙 지나가서 제대로는 못봤지만)


좀 비상식적으로 생긴 탄창에 주목





그나저나 기관총은 그렇다 치더라도..........


...도대체 만주에 짚차가 왜나오는건데?!?!
(참고로 짚차는 1940년 개발)





by shaind | 2008/07/20 14:01 | 트랙백 | 덧글(10)
유튜브에서 발견한 것들

비록 음질은 별로 좋지 않고 심지어 모노 음향을 제공하긴 하지만

유튜브에는 희귀한 연주 실황의 (불법적인)업로드에서부터 프로
또는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직접 찍어 올린 UCC연주동영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 영상이 올라와 있고, 게중에는 이전까지 음반에 담긴 적이
없었던 색다르면서도 대단한 연주도 있습니다.

유튜브를 돌면서 발견한 재미있거나 신기하거나 괜찮은 음악 동영상들을 한번 소개해봅니다.


[보기↓]
.






JS바하,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 BWV565 中 토카타
비탈리 드미트리예프, "바얀"으로 연주

"바얀"이라는 아코디언 비슷한 러시아 악기입니다.
원래 이런 류의 악기는 발음체의 원리가 오르간과 비슷해서 제법 비슷한 소리를 들려주죠.
좀 색다르긴 하지만 토카타에서는 파이프오르간 만한 포스는 못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의 "푸가"가 진국이죠.





JS바하,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 BWV565 中 푸가
비탈리 드미트리예프, "바얀"으로 연주

...뭐라고 덧붙일 만한 말이 없군요.






JS바하,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 BWV565

같은 곡을 이번에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비주얼라이즈한 것입니다.
(연주는 미디)
음의 길이와 높낮이, 음색 및 성부 구분을 아주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푸가 예술의 핵심적인 방법론인 "선율의 대위법적 모방"
을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르간 연주의 특징적인
건반 누르는 방식도 시각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JS바하, "음악의 헌정" BWV1079 中 "무한히 상승하는 카논"
브래들리 리먼, 하프시코드 및 오르간

"바하 조율법"의 발견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브래들리 리먼의 연주입니다.

이 무한히 상승하는 카논은 주로 현악 앙상블이나 하프시코드로 연주되지만
오르간으로 연주되는 것은 좀 색다르죠.

사실 오르간이 가지는 몽환적인 음색이 무한히 조성이 상승하는 카논을 연주하기에
알맞다는 느낌이 듭니다. 비유하자면 Stairway to Heaven 쯤 될까...






JS바하, 푸가 사단조 BWV578
알베르트 슈바이처, 오르간으로 연주

슈바이처 박사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자선가이자 선교사로 유명하지만
그전까지는 바하의 연구자로서도 유명했습니다. 나중에는 순회공연을
하거나 음반을 내서 호구지책 자선활동의 비용을 대기도 했죠.






JS바하, "평균율 건반악기" 제 1권 13번 전주곡과 푸가 올림 바 장조 BWV 858 中 전주곡




상동, 푸가

유니스 노턴, 피아노로 연주

곡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느껴지는 명강의라고 하겠는데
듣는 분들은 지겨워 죽을 것 같은 분위기군요.

유니스 노턴이 연주한 평균율 음반을 정말 구하고 싶긴 한데
파는 곳이 없는 것 같아 참 아쉽습니다.







JS바하, "평균율 건반악기" 제 2권 9번 전주곡과 푸가 마 장조 BWV878
마티아스 도블러, 피아노로 연주

저는 이 곡은 최근까지 "절대 피아노로 연주하면 안되는 바하 작품"으로 분류하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사실 타티아나 니콜라예바,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등등 쟁쟁한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한 평균율을 들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 곡만은 하프시코드가 들려주는 영롱한
울림을 능가할만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아주 싱거운 연주가 되어버리는 것을
몇 번이나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연주는 페달의 적극적인 사용으로 그런 부분을 상당히 보충하고 있기 때문에
피아노 연주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들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간에 몇번 틀리긴 합니다만)






JS바하, "평균율 건반악기" 제 2권 9번 전주곡과 푸가 마 장조 BWV878 中 푸가
연주자 불명,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로 연주

하츠네 미쿠가 클래식이라......

흔히 하츠네 미쿠 하면 떠오르는 덕후들의 장난감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유튜브에는 클래식 곡들을 하츠네 미쿠로 연주한 동영상이 상당히 많습니다.
(니코니코의 어느 근성가이께서 평균율 1권 전곡을 하츠네 미쿠로 연주해놓은 것도
유튜브에 있습니다만 퀄리티의 편차가 좀 심한 관계로 여기에 올리지는 않겠습니다)

가사를 "퀴리에 엘레이손(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로 해 놓은 것도 잘 어울리고
딕션도 상당히 정교하군요.






JS바하, "음악의 헌정" BWV1079 中 6성 리체르카레
연주자 불명,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로 연주

개인적으로는, 제가 여태껏 들어본 이 곡의 연주 중에서 가장 단조롭지 않으면서도
각 성부들이 만드는 화음을 가장 잘 들려주는 것이 이 연주였습니다.

흔히 하프시코드는 단조롭기 쉽고 현악/목관 등의 앙상블은 집중력이 떨어지는 편인데
이 연주는 두가지를 모두 회피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니엘 PI 제작, "푸가를 작곡하는 법"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히트곡 "Oops, I did it again" 을 주제로 삼아
푸가를 작곡하는 방법의 예시를 보여주는데, 편집 기술의 사용이
아주 적절하다고 하겠습니다.






글렌 굴드 작사/작곡, "그래, 푸가를 작곡하고 싶단 말이지?"

가사가 아스트랄하군요. 소개하고 싶지만 너무 길어서...






도메니코 스카를랏티, 하프시코드 소나타 K209 라장조

어째서인지 스카를랏티가 작곡한 하프시코드 소나타들은 정작 하프시코드보다
기타로 연주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군요.

이 곡은 하프시코드로 연주하기에는 너무 색채가 강하다고나 할까...어쨋든귀가 아픈
연주가 되기 쉬운데, 나일론 현을 쓰는 클래식 기타로 연주하기에는 제격이죠.






Post Script : 올려놓고 보니 거의 대다수가 바하 작품이네요. 넵 바하빠 ㄳ




by shaind | 2008/07/16 21:04 | 본 것과 들은 것 | 트랙백 | 덧글(3)
올 여름의 피서 계획


[올 여름에는 한달동안 여기서 피서를 즐기기로 했습니다↓]









넵 이열치열







한달동안 제철소에 실습 갑니다





by shaind | 2008/07/07 08:59 | 잡생각과 뻘짓 | 트랙백 | 덧글(6)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