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25 19:24

음계와 조율과 수학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2] 음악


음계와 조율과 수학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1] 로부터 이어지는 글입니다.


1. 저는 기본적으로 음악 전공자가 아니므로 이 글에는 용어의 혼동이나 개념상의 오해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2. 도표나 그림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보기]




앞의 글에서는 완전 5도/4도를 적층해서 7음계(Diatonic Scale)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언급한 뒤, 이 논리를 그대로 확장할 경우 모순에 부딛힐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3. 7음계의 확장과 그 결과

다성음악은 기본 선율의 으뜸음과 일정한 화성적 간격을 가지고 있는 다른 음을 으뜸음으로 하는 다른 선율들을 여러 성부가 노래하게 됩니다. 또한 선법 기반의 중세 음악이 차츰 조성 기반의 근대적인 음악으로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으뜸음에서도 여러 협화적 간격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필연적으로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7음계를 확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F가 아닌 C로부터 시작하여 5도 혹은 4도의 적층으로 음계를 구성할 경우 C-G-D-A-E-B 다음에는 F보다 반음 높은 음(F#)을 새로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죠. 이렇게 해서 5도 위 방향으로는 F-C-G-D-A-E-B-F#-C#-G#...으로, 5도 아래 방향으로는 ...Ab-Eb-Bb-F-C-G-D-A-E-B 하는 식으로 7음계가 확장됩니다. 이 양상은 5도권(Circle of Fifths)을 그려서 나타낼 수 있습니다.


5도권(Circle of Fifths)



이런 식으로 7음계(Diatonic Scale)를 12음계(Chromatic Scale)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이 확장 과정에서 근본적인 모순이 드러나는데, 실은 이건 중학생만 되어도 알 수 있는 것이죠. 소인수분해의 일의성이 문제입니다.

(p 와 q는 0이 아닌 정수)


즉, 근본적으로 완전5도(3/2)를 아무리 쌓아 봤자, 옥타브(2/1)를 쌓은 것과는 결코 같아질 수 없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서, 위의 5도권에서는 A#('라'에서 반음 올린 것) 다음에 E#('미'에서 반음 올린 것)가 나와야 하지만 E#대신에 F가 와서 순환하는 체계가 됩니다. 왜냐하면 E에서 반음을 올린 것이 곧 F니까요. ('미'와 '파' 사이는 반음) 그러나, 직접 계산을 해보시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저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음계에서 E#과 F는 실제로는 절대 같은 음이 아닙니다. 즉, 이른바 '이명동음'은 실은 같은 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5도권은 실제로는 완전한 순환체계가 될 수 없는 것이죠.

따라서 이런 식으로 완전5도/4도의 적층을 통해서는 옥타브와 함께 완전하게 순환하며 돌아가는 12개의 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음의 높이가 약간씩 미세하게 "미끌어지면서" 어긋나는 무한히 많은 개수의 음을 얻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5도 나선(Spiral of Fifths)이라고 하는 것이죠.


5도 나선. 숫자는 F(파)를 1로 했을 때 각 음의 옥타브 내에서의
상대적 높이를 정수비로 나타낸 것



이런 문제를 무시하고 12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5도의 순환체계를 만들 경우, 이것은 실제로는 해가 없는 방정식인


의 근사적인 해(p=12, q=7)를 취하는 것이 됩니다. 이때 5도권 위에 있는 12개의 완전5도 가운데 하나는 나머지 11개에 비해 간격이 312/219 = 531441/524288 (=1.013643...) 만큼 좁아지게 되며, 당연히 "간단한 정수비"와는 거리가 먼 불협화적인 간격으로 됩니다. 이것을 Pythagorean comma 라고 합니다.



G# 와 Eb사이에 Pythagorean comma가 들어간 12음계.
(숫자 0은 완전한 순정 5도, -1은 는 Pythagorean comma에 의해 불협화적임을 의미)



이러한 Pythagorean comma는 성악을 하는 경우나 현악기로 독주, 소규모 합주 등을 할 경우에는 그다지 문제가 안 될 수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 목소리나 현악기는 임의적이고 연속적인 높이의 음을 낼 수 있으므로, 현재 연주중인 조성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간격 쪽으로 Pythagorean comma를 "밀어놓고" 연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위에 그려놓은 5도권에서는 F~B까지의 음을 쓰는 다장조(C maj)에서는 잘 안 쓰이는 G#-Eb 쪽에 Pythagorean comma가 들어가 있는데, 만약 이 간격이 사용될 수 있는, 예컨대 올림 사 장조(G# Maj.)의 화음을 연주할 땐 이 Pythagorean comma를 다른 쪽으로 옮겨놓은 새로운 음계로 연주를 하면 되는 것이죠. 물론 연주자는 각 조성마다 협화적으로 되는 위치에 현을 짚어야 되니 연주하기 좀 어렵긴 하겠습니다만......

그러나 건반악기는 기본적으로 조율이 완료된 12개의 건반으로 모든 연주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이러한 문제는 전조(Transposition)가 빈번한 음악이나 다성음악 등에 의해 한 곡 안에서 다양한 화음을 연주할 필요가 생기면서 특히 두드러졌죠. 16~18세기의 오르간 제작자들은 Pythagorean comma를 포함하는 5도의 뚜렷한 불협화성과, 여기에서 유발되는 특유의 강렬한 맥놀이(Beat)가 마치 늑대의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하여, 이러한 간격을 "늑대 5도(Wolf Fifth)" 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늑대 말고...)





...일단 실제로 한 번 들어보죠.




(먼저 3/2 비율의 순정 완전5도 G#-D# 화음이 나온 뒤,
Pythagorean Comma가 들어간 G#-Eb 화음이 연주됩니다.)
※플러그인 관련 문제로 재생이 안 되면 아래의 파일을 다운받으시면 됩니다.
Gis_Es_organ.mp3

웅웅대는 소리(맥놀이)에 주목하시길.

여튼 이러한 "늑대"의 불협화성은 회피되어야 했기 때문에 건반악기의 연주를 제약하게 됩니다.

이보다는 약간 덜 중요한 문제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던 Syntonic Comma라는 것입니다. 저렇게 완전5도/4도를 적층해서 만든 음계는 장3도가 81/64로 비교적 불협화적으로 된다는 점은 이미 이야기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장3도를 Syntonic Comma (81/80)만큼 낮춰야 할 필요가 생깁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낮춘 프톨레미우스 음계는 3과 2 외에도 5라는 또다른 소수를 포함하기 때문에 피타고라스 음계처럼 확장하기가 훨씬 더 까다롭게 됩니다.



여태까지 설명한 것과 같은 여러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음계는 앞의 글에서 설명한 것 같은 엄밀한 정수 비례 관계로부터 어느 정도 이탈해야만 했는데, 이것을 음률(Temperament) 라고 합니다. 이 Temperament 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쓰겠습니다.




Post Script : 위의 연주 파일은 스칼라(Scala)라고 하는 프로그램으로 미디를 튜닝해서 만들었습니다.







덧글

  • Constant 2009/04/25 23:08 # 답글

    굳이 한문로 쓸 때는 tuning은 조율, temperament는 음률이라고 하는 걸로 압니다.
  • shaind 2009/04/25 23:24 #

    그렇군요. 고쳤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Temperament는 Temper 한다는 동사의 명사화인데, 음률은 그 단어에 해당하는 동사가 없어서 좀 불만스러운 번역어군요. 예컨데 "5도를 4등분 콤마 만큼 Temper 한다"라는 문장의 Temper라는 영어를 옮길 우리말이 마땅치 않네요.

    생각해보면 음률이란 단어는 "순정음률"하는 식으로 쓰이는 단어니까, Temperament 하고도 약간 미묘하게 다른 의미일지도요. 순정음률은 Temperament 가 안 되어있어서 순정음률이잖습니까. (Temperament는 기본적으로 좀 다듬고 두드려 끼워맞춘다는 의미인 반면 음률은 어떤 정적으로 정해진 체계라는 느낌이 강하니...)
  • vermin 2009/04/26 11:46 # 답글

    저런저런 늑대소리 맥놀이 훗 'ㅅ'
  • Gaka 2011/09/18 10:34 # 삭제 답글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덕분에 과제연구 겨우 마쳤네요 ㅜ
  • 2011/12/16 20:4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