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이 높은 일은 결국 일어나기 마련
by sha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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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꾸라 김지하



(전략)

......安竹間(안죽간)에 송장이 산더미같이 쌓이고
隨唐間(수당간)에 흐르는 피가 내를 이뤄 끝없은즉
밸없고 뼈없는 자 애오라지 바라는 것 그저 제 한 몸 安命(안명) 保身(보신) 뿐이것다
구년 큰 물에 햇빛 바라듯 나무아미타불
삽년 가뭄에 비 기다리듯 관세음보살
돌 쌓아 단 모으고 이제나
몸 씻어 제계하고 저제나
保身祕法(보신비법)을 학수고대하던 중에 홀연

櫻子(앵자)라 이름하는 성인이 나타나
하루는 목멱에서 처세술 공부하는 앵군이란 놈 앞에 놓고 설법하여 가라사대
아무 해 거쳐서 아무 해 당하면
지각있는 놈 살고 지각없는 놈 죽으리라
앵군이 물어
그 때가 언제이오니까......

(중략)

......앵군이 다시 물어
그때는 어찌어찌하오리까
櫻子 답해 가라사대
兩弓(양궁)이 가장 좋다.
木姓(목성)이 성하면 木姓과 붙고
金姓(금성)이 성하면 金姓과 붙되
盛衰(성쇠)가 無常(무상)하니 손바닥이 손등이라
그러므로 지각있는 자 애오라지 이쪽인듯 저쪽이고 저쪽인듯 이쪽이어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는 兩弓이 가장 좋다
다만 너에게 간곡히 이르노니 아랫것을 경계하라
차는 때가 기우는 때, 차는 때가 기우는 때
이 법을 일러 가라사대 櫻道(앵도)라고 하느니라
이리 말한 뒤에 자취를 감추니
방정맞은 양금 소리 멀리 흰구름 속에서 들려오고
사뿐사뿐 벚꽃 져서 사면에 쌓이는데
앵군이란 놈 大悟覺醒(대오각성)
그 길로 내쳐 맹세코 밤낮으로 櫻道를 연마컷다......

(중략)

......마침내 우루루루루─
난쟁이들 쏟아져 들어오니 바로 이때로구낫!
잽싸게 키줄여 아장아장아장아장 게닷 바람에 하오리 처억
걸쳐 입고 나서면서 곰방와?
오래간만에 고자가 맛이냐?
죠오센징 모조리 모조리 소대가리데쓰네, 빠가야로데쓰네
이 집에 독립운동자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저 집에 불령선인 세 마리 네 마리 다섯 마리
도모 잡수세요 도모 헤헤헷─

키다리들 카메라 들고 웅큼성큼 들어서니
키늘여도 모자라, 허리 펴도 모자라, 뒤축 높여도 모자라, 끝발로 서도 모자라
구두창에 스프링 넣어 뾰뿅뿅 튀어오르며
예쓰 예쓰 베리 예쓰
내가 삼년 전 미국 런던의 고롬비아대학에서
우리나라 키다리 나라의 연방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강력히 주장, 주장했읍네다, 쬬꼬렛또나 기브미!

왼손잽이들 들어오니 얼굴 대번에 화들짝─
붉어지면서 꽝─
연단치고 번쩍─
두 손 들고 만세─
위대한 말싸스주의 만세─ 아니다
위대한 싸말스주의 만세─ 아니다
위대한 싸스말주의 만세─ 아니다
위대한 스싸말주의 만세─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이고 고 잡것이 무엇이더라? 좌우단간 덮어놓고 만세─

오른손잽이들 들어오니 뾰도독
쌩이빨 갈고서 오른손 무명지 손톱 및 살짜기 깨물어 피내어
비장한 얼굴로 휘갈겨 혈서를 흰 천에 쓰는데
왼손 큰 놈 모조리 죽여랏!

이리 찰싹 저리 붙어 꿉벅
저리 쩔컥 이리 붙어 헤쭉
간에붙어 밀착, 쓸개 붙어 점착, 눈치 봐서 착착
낯짝 좋고 비위 좋고 주변 좋고 반죽 좋아 굽신굽신
自由(자유) 좋다 民主(민주) 좋고 學生(학생) 좋아 軍人(군인)좋네 히쭉히쭉
자동조절 허리 훈련 칠면조 얼굴 연습
이뜻저뜻 안개話法(화법) 이심전심 묵묵話法
詐(사)법 欺(기)법 둔術(술) 갑術 夜半三更密通術(야반삼경밀통술)
이權(권) 저謀(모) 좌術(술) 우數(수), 조조 찜쪄 먹게 왕창 터득하고 나니......

(후략)


김지하, "櫻賊歌(앵적가)",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 김지하" (동광출판사 1984) pp.63~64




김지하가 이 시를 쓴 것은 정치권에서 사꾸라 논쟁이 벌어지던 1970년대 초반이었다. 하지만 김지하의 시는 그런 단순한 정치 현안의 문제를 넘어서, 근현대 한국사의 질곡 안에서 기회주의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사실 한국사회의 (타칭) "수구 보수층"을 형성해서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는 "기회주의 세력"을 단순히 지탄하는 식의 문학작품이라면, 저 유명한 "꺼삐딴 리" 같은 것부터 해서 제법 작품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김지하의 이 시에는 약간 특이한 부분이 있다.

이 시의 초반부에서는 정감록이 발견된다. 일부(안죽간, 수당간* 운운하는 부분)는 정감록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기도 하고, 전체적으로도 정감록을 위시하여 구한말에 유행하기 시작한 민간 예언서나 속설의 처세론 · 보신론(?)의 내용과 문체를 띄고 있다. 이러한 민간 예언서, 처세와 보신에 관한 속설들은 대개 구한말의 혼란과 피폐 속에서 민중의 "방어기제"의 한 형태로 나타나서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잡았던 것들이다. (* 안죽간이란 안성과 죽산 사이, 수당간이란 수성과 당성 사이를 뜻하며, 이들은 청일전쟁 혹은 동학 무렵에 많은 사람이 죽은 큰 전투가 일어난 지역임) 이러한 속설들은 실로 세속적이고 즉물적이어서, 영적으로는 가난하며(예수의 화법과는 달리 절대 칭찬이 아니다) 이념적으로는 질박하고 지적으로는 황량하므로, "명예"나 "도덕"이나 "유대감"이나 "역사의식"이나 "민족"같은 건 찾아보기 어렵다. 시쳇말로 "그거 먹는 건가여" 하고 묻지나 않으면 다행인, 그런 의식이 근현대사의 질곡 안에서 저런 속설들을 통해 한국인이라는 집단의 내면에 공유된 것이다. (그 계보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오늘날의 "먹고사니즘"까지도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 이 시에서 앵도의 길을 걷다가 끝내 들켜 몰락하는 "앵군"이란 인물은, 악인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는 민중 내지는 인간이 갖고 있는 근원적인 어떤 특성을 확대 및 강화한 존재라는 점이 암시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앵도, 곧 기회주의는 우리 근현대사를 왜곡했(다고 흔히 주장되)지만, 궁극적으로 봐서는 인지상정인 면도 없쟎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시를 읽다가, 문득 김지하에게 그런 의도도 (조금은) 들어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전에 웬 뉴스를 보다가 김지하 사꾸라 운운하는 댓글을 봤다.

http://www.ohmynews.com/NWS_Web/Opinion/opinion1_m1_list.aspx?cntn_cd=A0001155401&add_gb=2&ord_gb=1&add_cd=RE005365295&line_no=3&page_no=1


일종의 음모론 꾸준글인데, 요새 김지하는 대략 그런 취급을 받는 모양이다.
앵적가를 쓴 시인으로서는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긴 뭐,


그럴 법도 하지......





......70년대까지의 김지하를 위해 건배.




by shaind | 2009/06/20 18:34 | 본 것과 들은 것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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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소시민A군 at 2009/06/20 20:20
저 앵군님은 오른쪽 모드일때가 좀더 격정적이고 비장하군요.
그 쪽에서 원하는 모습을 잘 연출하는 모습이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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