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23 23:22

트위터 - 가벼운 커뮤니케이션의 승리 잡상노트



이오공감에 트위터에 관한 글이 올라온 것을 본 김에, 평소 트위터에 대해 갖고 있던 잡상을 (언제나처럼 두서없이) 풀어 본다.



세 번째 천년기에는 가벼운 커뮤니케이션이 결정적인 승리를 구가하게 될 것이다.

(중략)

무거운 커뮤니케이션은 70년대 말에 이르러 위기를 맞게 된다. 그때까지 커뮤니케이션의 주된 수단은 텔레비전이었다. 어느 집에서나 크고 거추장스러운 상자 하나가 거실을 떡 차지하고 앉아 어슴푸레한 실내에 음산한 빛을 뿌렸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어 이웃집에 폐를 끼치곤 했다. 또 그것을 시청하는 사람들은 프로그램이 일방적이고 억압적으로 방영되는 동안 최면에 걸린 듯이 그 앞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타인(여자, 소수 민족, 주변인, 이질적인 존재들, 외계인 등)의 사생활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어떻게 끝날지를 궁금해하는 그 원초적인 욕구에 사로잡힌 채 말이다.

가벼운 커뮤니케이션의 첫걸음은 리모콘의 발명이었다.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그 원격 조종 장치 덕분에 소리를 낮추거나 차단할 수 있었고, 색깔을 변화시키거나 제거할 수 있었으며, 특히 채널을 아무 때나 바꿀 수 있었다. 또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의 연속적인 질서에 대한 감각을 잃기 시작했고, 그런 변화를 기민하게 간파한 제작자들은 자기들 프로그램에 어떤 총체적인 의미를 담아야 할 필요를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마치 정치 토론처럼 의미 없는 짤막한 담화의 연속(또는 중복)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램들이 방송의 전형이 되었다. 그런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방금 말한 것이나 상대방이 앞서 말했던 것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렇듯 정치 토론을 닮은 수십 개의 프로그램들을 넘나들 수 있게 됨으로써, 시청자들은 텔레비전 화면을 마주하고 자유롭게 창의력을 발휘하는 단계에 진입하였다.

한편, 예전의 텔레비전은 어떤 사건을 생중계함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 사건의 순차적인 전개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도록 강요하였다. 그런 생중계에서 시청자들을 해방시킨 것은 녹화기였다. 녹화기는 텔레비전을 영화처럼 볼 수 있게 하는 진보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비디오 테이프를 거꾸로 되돌릴 수 있게 함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사건의 진행 순서를 따라 전개되는 이야기와의 수동적이고 억압적인 관계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했다.

백워즈의 주장에 따르면, 이 단계에서 시청자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휴대폰을 사용하기 위하여 소리를 차단하고, 영상의 단속적인 전개에 걸맞도록 신시사이저로 연주하는 자동 피아노의 사운드 트랙으로 원래의 소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방송사 측에서는 청각 장애자들을 돕기 위한 것이라면서, 장면을 설명하는 자막을 넣어 줄거리에 토를 달아 주는 것을 습관화하였다. 그래서 두 남녀가 조용히 입을 맞추는 장면이 나오면, <사랑해>라는 뜻의 자막이 화면 밑에 나타나곤 했다. 시청자가 여러 프로그램을 결합하여 한 화면에서 동세에(어떤 프로그램은 무성으로, 그리고 흑백으로) 볼 수 있게 되면서, 텔레비전은 제 수준의 가벼움에 한껏 도달하였다.

가벼운 커뮤니케이션의 다음 단계는 동작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은 먼저 인터넷에서 시작되었다. 인터넷 이용자는 선명도가 낮은 부동의 영상을 대개는 단색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소리는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다. 정보가 화면에 글자로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인터넷과 특별히 관련된 가벼운 커뮤니케이션의 요소가 또 하나 있다. 네티즌들은 자기가 원하는 사이트에 접속하지 못하고 다른 사이트, 그리고 또 다른 사이트로 이끌리곤 했다. 그렇게 끝없이 사이트를 전전하다 보면, 자기가 애초에 무엇을 찾고자 했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게 된고, 그럼으로써 일체의 한정된 틀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야말로 커뮤니케이션의 즐거움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실용주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목적이 배제된 커뮤니케이션이다.

(후략)

움베르토 에코, "가벼운 커뮤니케이션의 승리에 대비하는 방법"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개역증보판, 열린책들 1999 pp.196~198)




위의 글은 1996년에 씌어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2001년에 읽었을 때만 해도 이 글에서 약간의 섬뜩함을 느낄 수 있었다. 움베르토 에코가 지적한 "가벼운 커뮤니케이션의 승리"의 징후가 이미 도처에 보이는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도 TV는 확실히 그런 것처럼 보였고, 인터넷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역시 어느정도는 그러했다. (에코가 저 글을 쓴 시점 이래로 인터넷의 속도와 처리능력은 극적으로 증가했고, 움직이는 정보량도 엄청나게 많아졌으며, 화상과 동화상을 커뮤니케이션에 이용하는 기술도 많이 개발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1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터넷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참으로 "경량화"의 길을 착착 밟아나간 것으로 보인다.

2001년 당시에만 해도 대다수의 인터넷 BBS에는 RE(라틴어 'Re', 혹은 Reply 의 앞글자) 라는 기능이 있었다. 게시판에 누가 글을 쓰면, 그 글 아래에 └ RE : 하는 식으로 그 글에 대한 응답 게시글을 쓸 수 있었다. 응답글에 또 응답을 쓰면 RE가 한 단계 더 늘어나는 식으로 해서, 길게 토론의 글타래가 만들어지곤 했다. (다음 아고라에서는 아직도 그런 스타일의 RE 기능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불과 몇 년이 지나는 사이에 그런 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것을 찾아보기는 힘들게 되었다. 그 시점에 이르러, 커뮤니케이션의 주된 수단은 다름아닌 "리플"(혹은 코멘트, 댓글)로 되었다 (물론 "리플"은 "Reply"의 줄임말이지만 여기서는 구분하기로 하자.) 제로보드 - 나는 내가 본 우리나라의 현상을 이야기하는 중이다 - 에 코멘트 기능이 생겼을 때, 그 효과는 혁명적이었다. 이전에 RE로 이루어지던 커뮤니케이션이 "리플"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RE는 여러가지로 불편한 면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즉응성이 떨어졌다. RE로 달린 글의 내용을 보려면 일일이 클릭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RE는 하나의 독립된 글이었기 때문에, 한 줄짜리나 거기에 버금가는 짧은 내용을 RE로 달기에는 효율성이 너무 떨어졌다. 심지어 하고싶은 말은 제목에 쓰고 내용은 "냉무"(내용無) 라고만 써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당시에는 게시판 폭주를 막기 위해 한줄글이나 냉무글을 제한하는 규칙을 가진 게시판도 흔했다.




* 당시에 유행하던 짤방 가운데 하나... 라고 하기에도 뭣한 게, 그때는 짤방이란 단어도 없었다 -_-;


그런데 "리플"을 다는 것이 가능해지자, 짧고 간단한 내용을 즉각적으로 쓰는 데 더이상 제한이 없어졌다. 사실 RE로 새 게시글을 쓰기 위해 쓸 말을 길게 생각해 내는 것은 좀 귀찮은 일이었고, 그래서 코멘트 기능이 등장하자 RE는 빠른 속도로 없어지기 시작했다.

한편 "리플"은 짧은 글을 쓰는 데는 유용했지만, 긴 글을 쓰는 데는 오히려 불편한 매체였다. 리플은 분량상으로도, 공간상으로도, 표현방법상으로도 제약이 많았다. 이미지를 덧붙이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많은 내용을 쓰다 보면 잘려서 여러 번 나누어 올려야 했다 (더구나 길게 쓴 리플을 여러 개 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이기도 했다). 가급적이면 짧고 압축적인 것이 리플 언어의 미학이 되었다. 즉 옛날 네티즌들이 소설가였다면, 이후의 네티즌들은 시인이 되었다.

또한 리플은 한 글과 그 글에 대한 반응 사이에 존재하는 "클릭 한 번"이라는 간격을 없앰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의 반응속도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RE를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이 서로 편지를 쓰는 것과 비슷했다면, 리플을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은 전보나 심지어 전화에 가까운 성격을 갖고 있었다. 다시 말해 게시판의 커뮤니케이션은 그 형태가 채팅과 비슷한 것이 되었다.(인터넷 초창기, 그리고 피씨통신 시절에 게시판에서 채팅하듯 글을 쓰는 걸 금지하는 규칙이 종종 존재했던 것과 비교해 보라.) 그래서 실은 네티즌들에게 시인의 재능 - 원하는 내용을 압축적으로 짧게 만드는 언어를 찾는 능력 - 이 없다 해도 문제될 것은 아닌 셈이었다. 내용이 없으면 되니까 말이다. 어차피 빨라진 반응속도를 쫓아가자니 내용을 생각할 시간도 없을 터이다.

그 결과로, 움베르토 에코가 위의 글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즐거움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실용주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목적이 배제된 커뮤니케이션" 이라고 부른 것이 나타났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진 리플놀이, 꾸준플 등등.

또 한편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즉흥적인 것으로 되어감에 따라, 리플들의 내용도 점점 직설적이면서 자극적인 것으로 변해갔다. 생각할 시간이 적을 수록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을 그대로 리플로 써내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점잖 떨면서 시작한 리플달기도 시간이 지나면 거칠고 감정적인 것으로 되기 쉽다. "가벼운" 매체인 만큼 굳이 진지해질 필요도 없으니까 더욱 그렇다. 그 결과로 우리에게 익숙한 악플, 인터넷 초딩 - 대개 실제 연령은 초등학생이 아니다 - 들이 생겨났다.

이 모든 것이, "리플"이라고 하는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미디어가 가진 기술적인 특성과 제약으로부터 유래했다. 지금의 인터넷 문화를 키워낸 것은 8할이 리플이다.

(사족이지만, 외국의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유튜브 코멘트란을 보아오던 사람이라면, "리플"이라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특성이 사용자들의 성향을 지난 몇 년 동안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이른바 웹 2.0 시대가 되면서, 1인 미디어로서 블로그가 대세로 되었던 적이 잠시 있었다. 나는 블로그가 (비록 먼 옛날 "홈페이지"라고 하던 것에 비해서는 "경량화"된 것이지만) "리플"로 대표되는 "가벼운 커뮤니케이션의 승리"라는 흐름에 저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정도는 그런 것 같아 보인다. 물론 블로그는 1인용 게시판 같은 것이고, 블로그의 코멘트란에서는 리플로 "가벼운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긴 하지만, 게시판과 블로그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게시판에 글을 쓰는 사람은 게시판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공간에 글을 쓰는 반면, 블로그에 글을 쓰는 사람은 블로그의 주인 바로 자신이라는 점이다. 블로그에서 떠들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스쳐가는 사람에 불과하다. 적어도 블로고스페이스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면 블로그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블로그 포스트라는 매체는 "가벼운 커뮤니케이션"과는 잘 맞지 않는다.


각설하고, 이젠 1인 미디어도 경량화되는 시대가 왔다. 트위터로 대표되는 단문블로그의 등장이 그것이다.

한편 이 트위터의 등장과 융성 과정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커뮤니케이션 수단 상의 변화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은(휴대폰망으로 전화가 된다는 점만 빼면) 작은 태블릿 컴퓨터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휴대성의 제약과 터치라는 근본적으로 고자스러운 UI 때문에 장문의 글을 타이핑하는 것이 어렵다. (물론 나는 스마트폰을 만져보지도 못했고 아직도 2G 휴대폰을 3년째 마르고 닳도록 쓰는 입쿼징징이긴 하지만,) 심지어 쿼티자판이 달린 스마트폰조차도 일반 컴퓨터 자판에는 훨씬 못미치는 타이핑 능력을 갖고 있다. 즉, 인터넷의 커뮤니케이션은 스마트폰이라는 단말을 통해 더 유비쿼터스해진 대신, 더욱 더 가벼워질 수 밖에 없다.

트위터는 가벼운 커뮤니케이션에 도달하기 위한 모든 제한을 벗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리플의 시대에도, 리플 그 자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게시글(어떤 곳에서는 '발제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이 있어야만 했다. 트위터에서는 그런 제약조차 없다. 순수하게 리플로만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 그것이 바로 트위터이다. 내가 보기에, 인터넷에 있어서 "가벼운 커뮤니케이션의 승리"라는 현상은 트위터에서 절정에 달한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소위 이글루스 우파 - 누굴 말하는 건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최근에 디씨 정사갤 등에서 건너온 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다 - 들이 트위터를 싫어하는 이유가 뭔지, 실제로 싫어하는지 어떤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굳이 추측해보자면......

......동족혐오 같은 게 아닐까. (농담)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디씨에서 리플을 열심히 달던 사람들이라면, 트위터에 적응하고 활동하기는 비교적 쉬울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그들의 성향과 비교적 잘 맞는 매체니까. 그들을 구경할 구경꾼이 적을 거라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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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네리아리 2011/01/23 23:26 # 답글

    이 글과는 다르지만, 트위터는 왜 이리 '정리'가 안되어 있는 느낌이 들까요?
    ㄴ짜증나 죽겠습니다.
  • shaind 2011/01/23 23:28 #

    제가 인용한 글의 "어떤 총체적인 의미를 담아야 할 필요를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되었다." 라는 문장과 비슷한 현상이 아닐까요? 뭔가 포스트모던한;;;;;
  • 나인테일 2011/01/24 00:59 #

    정리해서 쌓아놓는 곳이 아니라 내뱉어놓고 잊어버리는 곳이니까요.(....)
  • 울군 2011/01/24 01:12 #

    어차피 뻘글판이라는건 변하지가 않더군요... 어차피 뱉어봐야 금방 잊혀지지만;
    알티가 유지되면 좀 지속되지만 조잡한건 사실임...
  • Merkyzedek 2011/01/23 23:29 # 답글

    이렇게 줄고 줄어 나중에는 개미같이 화학반응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이룰수도 있을려나요...
  • 페이비언™ 2011/01/23 23:40 # 답글

    공감이 많이 가는 내용이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maxi 2011/01/24 00:02 # 답글

    디씨 정사갤 분들은 트위터 열심히 하십니다.

    사실 이글루스는 "민주화 전선"의 제2,3전선쯤 되는거라 덕질 취미 있는 정사갤 분들이 민주화 투쟁하시는거고 트위터면 꽤 여러분들이 공들여 활동하시는데..
  • 트윗트윗 2011/01/24 00:10 # 삭제 답글

    트위터는 게임으로 치면 삼국무쌍 같은 기분이죠. 휘두르는게 멋있는(팔로워 10만)사람과, 추풍낙엽처럼 날아가는(반응-리플라이) 모습을 보면.. 진중권 트위터를 보면 진짜 재밌어서 팔로잉을 안할수가 없음!

    140글자도 안되는 트윗하나로 대한민국에서 뉴스기사가 20개가 뜨는거 보고 그거 반응(무슨 진중권이 공식석상에서 말한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ㅋㅋㅋ) 찾아보면 정말이지 삼국무쌍하는 미래세계에 와있는 기분이더라구요.
  • ArchDuke 2011/01/24 00:27 # 답글

    잘 읽다가 1996년이라길래 놀랐습니다.
    트위터는 취향이 안맞아서...
    만일 하면 마미 메달린 장면이나 엘샤다이에서 에녹의 께이스런 얼굴이나 달까 생각 중입니다.
  • 키린 2011/01/24 01:05 # 답글

    움베르트에코의 혜안은 놀랍네요.

    트위터에도 꽤 수꼴들이 없지 않아 있는데, 어차피 트위터는 안보면 언팔하면 끝이니까요. 정사갤러들이 말하는 민주화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어렵죠. (소셜검색을 정복할 수 있는 있겠네요. 마치 실시간검색어 정복하듯이)
  • 남극탐험 2011/01/24 09:15 # 답글

    ㄴㄴ 다음 천년에 인간은 멸종합니다.
  • 빈터 2011/01/24 09:25 # 답글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은 부분 공감이 가네요. 그렇게 가벼워지는 것이 좋으냐 싫으냐, 혹은 옳으냐 그르냐에 관계없이 어쨌든 흐름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유투브 댓글들을 잘 안읽어봐서 몰라서 그러는데 본문 중의 유튜브 참조하라는 부분은 유튜브 댓글에서도 동일한 흐름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 shaind 2011/01/24 10:20 #

    옛날 유튜브 리즈시절엔 다들 좋은 말만 써주는 그런 분위기였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꾸준플도 생기고 악플러도 생기고... 지금 유튜브 댓글란은 전쟁터죠.
  • 빈터 2011/01/24 12:24 #

    그렇군요. 역시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는 힘은 작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벼운 커뮤니케이션은 결국 그 내용까지 가벼워질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안타깝네요.
    친절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 호옹 2011/01/24 18:19 # 답글

    오랫만에 정말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저 역시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던 부분인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왜이렇게 트위터가 내키지 않았는지 확실하게 정리가 되네요)
    이렇게 조근조근 풀어내신 글을 읽으니
    대세의 흐름이라는 게 한 눈에 보이는군요..

    새로운 것 하나 깨우치고 갑니다..
  • 디굴디굴 2011/01/24 18:48 # 답글

    트위터는 그냥 "여러사람에게 한꺼번에 보내는" 전화 문자질하고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글은 보존되지 않고 순식간에 사라져 없어지며, 그다지 중요한 내용을 남겨놓기에도 충분하지 않고, 140 자 제한으로 긴 글을 쓰기에도 적절하지 못하죠.

    그냥 "나 오늘 이런 옷 입었어" "나 이런거 샀어" "이런거 봤어" "이런데 갔어" "이런 일 당했어" "이런 거 먹었어" "이제 잘거야 안녕" 하면서 내가 뭘 했는지 다른 사람이 봐주길 바라는 투정부리기 한줄 덧글에 불과하죠.

    하지만 그것에 익숙해져버리면 그 편안함에 점점 긴 글을 쓰기가 귀찮아지게 되고, 중요한 글을 남기는 것을 소홀히하게 되며, 누가 쓴 글을 잘 읽지 않게 되고, 다른 사람이 보이는 관심에 무감각해지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편안함을 추구하다가, 소중한 무언가를 대신 잃게 되는 건 좀 가슴아픈 일이지요.
  • 부엉부엉 2011/01/25 05:33 # 답글

    많은 부분이 공감이 가서 글 남깁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확실히 쉬운사회가 되긴 한것 같아요.
    쉽게 내뱉고 쉽게 잊어버리고....
    하지만 상처받은 사람은 쉽게 잊혀지지 않고 치유하는데 시간이 걸리겠죠.
  • RE는 2011/01/27 14:02 # 삭제 답글

    라틴어에서 온 말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RE_%28e-mail%29

    # RE: or "Re:" followed by the subject line of a previous message indicates a reply to that message.

    * re (the ablative of res 'thing') has been used in English since the 18th century to mean 'in the matter of', 'referring to', or 'about'.[1] In business letters and memoranda, "Re:" may be used instead of "Subject:" to set off the topic.[2]. However, "Re" in e-mail is used only for replies.

    http://en.wiktionary.org/wiki/re#English

    Preposition

    re

    1. About, regarding, with reference to; especially in letters and documents.

  • shaind 2011/01/30 10:09 #

    저도 그렇다는 이야기를 어딘가에서 들었지만 잘 생각이 나지 않아서 쓰지 않았는데, 글에 추가해두겠습니다.

    단, 과거 게시판의 RE: 기능 버튼에 "Reply" 하는 식으로 써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볼 때, 이런 오해가 널리 퍼져있었던 것은 사실인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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