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30 23:23

봄이 오면 보고 들은 것


지난해 여름에 아파트 화단에 심어진 백합의 구근(알뿌리)을 캐어서 인편(비늘잎) 하나를 떼어 내어 인편꽂이 번식을 시도한 적이 있다. 인편에서는 세 개의 작은 구근이 생겨났고, 나는 이를 세 개의 화분에 나누어 심었다.


(참고로 인편을 심으면 이런 식으로 손톱만한 구근이 생긴다.)


이 구근들은 금새 잎을 피워올리기 시작했는데,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잎을 피워올리긴 했지만 줄기를 만들지는 않았던 것이다. 식물이 광합성을 하고 자라면서, 구근의 인편들은 많아지고 또 굵어졌지만 각각의 인편들이 마치 잡초같이 이파리들 - 일종의 떡잎 -만 피워올릴 뿐이고 인편 중심에서 줄기가 올라오지는 않았다. (백합은 키큰 줄기에 잎과 꽃이 달리는 식물이다)

여튼 그 상태로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었는데, 나는 화분 세 개중 두 개를 집안에 들여놓았다. 들여놓은 두 화분은 계속 그 상태를 유지했다. 반면 바깥에 내놓은 채였던 화분은 (좀 버티긴 했지만) 역시 겨울인지라 점점 시들기 시작했다. 낮최고기온이 영하를 찍는 날이 며칠 계속되고, 화분의 이파리가 점점 시들어 몇 개 안 남았던 몇 주 전의 시점에서 나는 왠지 구근이 얼어서 죽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결국 그 화분도 집안에 들여놓기로 했다.

그런데 집안에 들여놓자 그 화분이 갑자기 제대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화분 중앙의 작은 싹이 줄기고, 주변의 긴 이파리는 구근의 개별 인편에서 올라온 떡잎이다.)



씨앗 중에도 그런 것이 있긴 하지만, 백합 구근 역시 겨울을 한 번 거쳐야만 비로소 싹이 튼다. 다른 화분에 심은 구근이 제대로 싹을 틔우지 않은 것은 이것 때문이었다. 알아보니, 내가 했던 것처럼 여름에 백합 인편을 떼어 꽂아 번식시키는 경우에는 인편이나 구근을 냉장보관해서 이듬해 봄에 심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씨앗이나 구근이 겨울이라는 외부자극조건이 주어져야 발아한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합리적일 수도 있다. 예컨대 봄에 꽃이 피고 여름이나 초가을에 씨앗이 생겨 땅에 묻힌다면, 아직 일조량과 온도와 수분이 적당한 시점에서 싹이 터버릴지도 모른다. 그 싹은 충분히 자라기 전에 겨울을 맞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 싹트기에 적당한 환경이라 하더라도, 지금의 계절이 봄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싹을 틔우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리고 겨울이 왔다는 것은 봄이 온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이다.




Post Script : 원예 밸리가 생겼으면 좋았겠지만...

덧글

  • ㅎㅎ 2011/02/01 13:54 # 삭제 답글

    뭔가 벅차오르는 기분이네요.
  • 나미 2011/02/05 23:26 # 답글

    꽃이 핀 게 보고 싶어지네요.. 기다리시는 마음 기대되실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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