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18 23:37

헌법의 영토조항 잡상노트


한 타이밍 늦은 헌법 이야기.


헌법에는 제1공화국 때부터 영토조항으로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 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이 영토조항의 중요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영토조항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을만한 근거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심히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한 1948년의 국제연합 총회 결의안 195(III)에서 기인한 것이다. 결의안의 해당 내용은 다음과 같다.

2. Declares that there has been established a lawful government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having effective control and jurisdiction over that part of Korea where the Temporary Commission was able to observe and consult and in which the great majority of the people of all korea reside; that this Government is based on elections which were a valid e-pression of the free will of the electorate of that part of korea and which were observed by the Temporary Commmission; and that this is 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

2. 임시 위원단의 감시 및 조언이 가능했고 한국인의 대다수가 거주하는 한반도의 부분에 대해
실효적인 지배력과 관할권을 가진 합법적인 정부(대한민국 정부)가 성립되었으며; 이 정부는 해당 지역의 선거인단의 자유의사가 유효하게 표현되고 임시 위원단의 감시 하에 수행된 선거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 정부가 한국 안에서 그러한 유일한 정부임을 선언한다.

(결의안 전문)


이 결의안이 정확히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 문단의 앞부분에 명확히 제시된다. 곧 제1공화국 정부는 국제연합 임시위원단 감시하에서 선거가 가능했던 한반도의 부분(that part of Korea), 곧 남한지역을 지배하는 정부로서 성립되었다고 선언한 것이다.

흔히 맨 마지막 문장(this is 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을 한국의 유일한 그러한(합법적인) 정부라는 뜻으로 해석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봐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표현이 "Government of Korea" 가 아니라 "Government in Korea" 임에 유의할 것. 이것은 대한민국이 한국 안에 존재하는 유일한 합법적인 정부라는 뜻일 뿐이다. 즉, 당시 성립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이 북한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합법적인 정부라고까지 선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북한지역에 합법적인 정부가 아예 존재하지 않을 뿐. 이러한 점은 결의문의 뒷부분에도 계속 등장한다.

Resolves that, as a means to the full accomplishment of the objectives set forth in the resolution of 14 November 1947, a Commission on Korea consisting of Australia, China, El Salvador, France, India, the Philippines and Syria, shall be established to continue the work of the Temporary Commission......(후략)

1947년 11월 14일의 UN결의(결의안 112, UN감시하 선거에 의해 한국 정부를 수립한다는 내용)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오스트레일리아, 중화민국, 엘 살바도르, 프랑스, 인도, 필리핀 및 시리아로 이루어진 한국 위원단이 구성되어 임시 위원단의 작업을 계속하도록 결의한다......(후략)

(ibid.)


즉, 당시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1947년의 결의안 112(II)호의 결의사항, 곧 UN감시하에 한반도를 통치하는 독립정부를 수립한다는 결의사항이 완전하게 실현되지 못한 상태라고 간주되고 있다. 즉, 대한민국 정부가 이미 수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지역까지 아우르는 '한반도 전체'에 주권을 행사하는 정부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에, 임시위원단의 작업을 계속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막타로, 결의안의 마지막 문단에는 다음과 같은 친절한 권고가 들어간다.

9. Recommends that Member States and other nations in establishing their relations with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take in to consideration the facts set out in paragraph 2 of the present resolution.

9. 회원국 및 기타 국가에 대하여 대한민국정부와의 외교관계를 성립함에 있어 본 결의안의 2번 문단에 제시된 사실관계(위의 2번 문단 번역 참고)를 고려하도록 권고한다.

(ibid.)


그러니까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는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이긴 하지만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정부가 아니라 38선 이남만의 정부니까 알아서 잘 생각하라는......



물론 국제법적으로 어떻게 정당성이 부여되건 간에 우리에게는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제일 중요하지만,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헌법상 영토조항이, 우리나라 밖으로 한발짝만 나가도 대다수의 외국인들에게는 그냥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사실을 적어도 인식하고 있을 필요는 있다.

단적으로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은 만약 지금의 북한 정권에 뭔가 문제가 생겨서 지배력을 상실할 경우, 우리나라가 당연하게 1순위로 북한지역에 대해 권리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은 그건 우리나라에서만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이고, 다른 나라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해야 할 이유도 근거도 전혀 없다. 이 점은 유사시에 우리나라를 직간접적으로 지지해줄 우방국들도 마찬가지이다. 즉, 만약 우리가 북한 급변사태시(궁극적으로는 북한이 붕괴될 경우) 한반도 북부를 헌법의 내용대로 우리 것으로 만들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면, 우리는 한반도 북부가 당연하게 우리 거라는 식의 안일한 생각을 벗어나, 평상시부터 주변국과 우방국이 한반도 북부를 정말 우리 것으로 인정해줄 수 있도록 소위 "밑작업"을 아주 잘 해둬야 할 필요성이 있다. (민간인 신분으로써 우리나라 외교/국방관료들이 이 문제에 어느정도로 힘을 쏟고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한편으로 국민들은 이 문제에 관하여 충분히 인지하고, 이런 "네타"에 내성을 키워둘 필요가 있다. 유사시에 "엉뚱한 소리"를 하는 주변국과 우방국들을 보면서 뒷목잡고 쓰러지 괜히 흥분해서 우리 외교정책에 불리한 영향을 주는 여론을 형성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가 있다. 헌법의 영토조항은 우리가 통일을, 그러니까 흡수통일을 할 생각이라면 매우 중요한, 필수적인 조항이다. 하지만 흡수통일이 점차 비현실적인 것으로 되어가는 가운데, 다른 대안적 형태의 통일을 추구함에 있어 이 조항이 걸림돌로 되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 이런 특성 덕택에 이 조항은 우리에게 불리한 형태의 통일 - 이라기보다는 그냥 북한의 평화공세 - 를 차단하는데는 효과적이기도 하다.) 예컨대 (궁극적 통일국가를 위한 중간단계로써) 연방제 통일을 우선 실시하고자 한다면, 그 연방정부의 헌법과 대한민국 헌법의 영토조항은 충돌할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이 조항은 일단 남북한 평화공존조차도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만든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북한에 무슨 정권이 세워지건 간에 그건 정부 참칭 반란자니까. 물론 영토조항에도 불구하고 실제 정책상으로는 북한을 "사실상" 하나의 국가처럼 취급하고 평화공존하려는 정책을 펼 수도 있긴 있다. (그럴 경우 이걸 불가능하게 만드는 건 북한 정권 그 자체밖에 없다.) 그러나 이 조항이 헌법 안에 살아숨쉬는 한, 북한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고 남북관계가 어떤 평화국면에 도달하건 간에 "실용적으로 부드러워진 정통이 겪는 양심의 가책"은 언제든지 튀어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핑백

  • Adagio ma non tanto : 대한민국 정통성 논쟁 감상 2013-12-31 17:13:08 #

    ... 직접 UN GA Res. 195(III) 를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몰랐던 사실이고, 그래서 약간 문제의식도 가지고 있었던 부분인지라 (http://shaind.egloos.com/5519985) 이 문제에 관한 한 '좌빨교과서' 쪽에 동정적인 편이었다. 2. 일부 '우익'분들의 피꺼솟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문제가 ... more

덧글

  • Real 2011/07/18 23:41 # 답글

    글쎄요 저 조항문제와 영토조항문제는 충돌건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북진이후 한국전쟁때 한국정부와 갈등을 빚었지만 이 갈등의 문제에 대해서 결국 작계5027에서는 합의를 본바 있습니다. 이는 북한점령후 통제및 한국주도 통일문제 관련해서 한미간 협의한 이유에서 그 결과를 볼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그리고 흡수통일이 비현실적이라고 보는건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흡수통일이 더 현실화되어가고 있는 문제점을 봐야한다고 봅니다. 동시에 다른 대안의 통일이 설령 전쟁통일이더라도 마찬가지이며 평화통일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1:1 대등통일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우리가 인지해본다면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 Real 2011/07/18 23:42 #

    더욱이 독일 사민당의 영구분단 정책을 모티브로 따운 햇볕정책 이하 조공정책은 이미 언급하신

    물론 영토조항에도 불구하고 실제 정책상으로는 북한을 "사실상" 하나의 국가처럼 취급하고 평화공존하려는 정책을 펼 수도 있긴 있다.

    되었잖습니까?
  • Real 2011/07/18 23:43 #

    이제는 통일은 흡수통일이지만 통합의 문제에서 흡수통합분야와 비흡수통합분야인가를 논할문제라고 봅니다. 물론 통일을 안할거라면 의미가 없지만요. 통일은 이미 흡수통일이라는 전제는 더 명확할수밖에 없습니다. 힘의 차이가 너무 나는데 어떻게 흡수통일이 안되겠습니까?
  • Real 2011/07/18 23:56 #

    한가지 빠드리신게 있다고 봅니다.
    헌법재판소 판례를 보면 이북지역 즉 대한민국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이 북한지역에 대한 북괴는 불법정부참칭집단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 지역에 대한 교섭단체로서는 인정하는 형태가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용적으로 부드러워진 정통이 겪는 양심의 가책의 개념의 근본주의 문제가 지독하게 나타날 문제는 그리 아니라고 생각되긴합니다. 그럴일이 되려면 근본적으로 그전에 영토조항이 수정될것 같지만요.
  • shaind 2011/07/20 00:53 #

    1. OPLAN5027은 전면전작계인데, 이 상황이라면 오히려 한반도 북반부에 대한 권리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한반도 북반부는 한미연합군이 전쟁으로 "따먹은" 지역이 되는 셈이니까 합법성을 걱정할 계제가 아니죠. 차라리 한미연합군이 전쟁으로 북한(과 예상되는 중국의 지원)을 격파하지 못할 걸 걱정해야지.

    오히려 미국이 이 작계에서 한국 주도의 통일국가 수립을 지지했다면, 그 작계가 전면전 상황에서의 북한 점령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게 아닌 다른 상황 - OPLAN5027이 적용되기 어려운 상황 - 에서는 미국이 명분을 만들기 쉽지 않겠죠.

    그건 그렇고 제가 아는 한 공개된 5027의 내용은 그냥 점령후 한반도 통일을 위한 단계를 밟는다고 했는데, 이게 한국에 의한 자동적인 한반도 통일을 의미하는 건지, 아니면 (6.25때 처럼) 유엔이 주체가 된 통일준비작업인지는 모르겠네요. 무슨 소스가 있으신가요?

    2. 흡수통일은 점점 비현실적인 것이 되고 있습니다. 남북간 소득격차와 생활수준 격차가 너무 심하게 벌어지면서 북한을 남한 체제에 그대로 흡수 편입하는 건 거의 자해적인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현재 북한정권의 폭압적 지배체제는 90년대 초반에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강고했다는 사실이 최근까지의 경험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이 정권은 물론 남한에게 나라를 넘겨줄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스스로 무너져서 남한에게 기회를 줄 정도로 약하지도 않고, 매우 불충분하긴 하지만 뭣하면 기대어볼 구석도 있긴 있습니다. (중국)
  • Real 2011/07/20 01:01 #

    언론공개 기준이라서.. 사실상 그부분은 비공개사항이잖습니까? 횡설수설쓴댓글에 답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적으로 UN문제도 있겠지만 제판단에는 한국주도 통일문제론을 한것을 보면 일시적으로 한미주도하에 새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통일하는 형태의 남북한 연합이 잠깐의 과도기를 거치는 형태가 아닌가 추측을 하게됩니다.

    우선적으로 흡수통일이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적이고 더 명확한 것이지요. 독일의 통일의 예를 봐도 그렇고 거의 엇비슷한 형태에 있던 예맨의 예에서도 흡수통일의 사례는 확연하게 들어납니다. 예맨의 경우 결과론에 입각한 문제이지만요. 하지만 현재 남북간의 문제의 경우 경제력에서만 무려 20~30배가까이 격차가 나있는 상황이니.. 오히려 흡수통일이 안된다면 이상한 문제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통일의 하부문제인 각 분야별 통합에 대한 사항들이 더 중요하게 보는 이유입니다. 흡수통합될 분야와 비흡수통합분야에 대한 분별화와 연구화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외부개입에 의한 흡수통일 불가 즉 중국위협론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어떻게 해서 극복하자는 입장인지는 shaind님께서 아실것이라 생각합니다^^;
  • Real 2011/07/20 01:09 #

    사실 UN의 저 문건에 대해서도 저도 과거 다른 입장으로 보았지만 제가 외부개입에 의한 통일부정문제에 대해서의 국제정치 연루성에 의한 극복문제는 요것도 포함이 되는지라..
  • Joshua-Astray 2011/07/19 09:03 # 답글

    영토조항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후술된 문제는 바로 다음 조항인 평화통일조항의 존재로 인해 많이 상쇄됩니다.
  • JUNE 2011/07/19 09:09 # 삭제 답글

    예전에 저도 위 문제로 UN GA Res.195(III) 해석 관련해서 인터넷에서 키워를 한 적이 있는데, 끝까지 잘못된 번역을 물고 늘어지더군요.

    shaind님의 지적대로 당시 결의안에선 어디까지나 UN의 감시하 선거가 이루어진 지역에서의 합법적인 정부라는 의미였지, 한반도 전역을 지칭한 건 아니죠.

    국제법상 국내법은 일종의 보충역할을 하거나 할 뿐 일반적으로 하나의 사실(mere fact)취급을 받으므로 우리가 헌법에 한반도를 영토규정으로 삼던 대마도를 추가하던 아무련 효력은 없죠. 우리가 통일할 때 합법적인 조약을 통해 하는 경우면 모를까, 북한의 정권이 붕괴되고 힘의 공백상태에서 남쪽이 "자연스럽게" 영토를 주장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결국 통일할 때에는 어떤 형식이던 조약체결을 통해 국제법상 문제의 여지를 없애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최선이겠죠.
  • 라피에사쥬 2011/07/19 11:32 # 답글

    끝에서 3번째 문단에 특히 공감합니다. 한국의 입장은 분명 한반도 문제에 중요하지만, 북한은 국제적으로 국가로 인정을 받고 있고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했을때 조중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해 중국군이 북한에 진주하고자 한다면 이를 외교적으로 방해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 행위를 '불법'이라고 주장할 순 없겠죠.

    반면 한국군이 북한과 중국의 용인을 받고 같은 상황에서 북한영토내에 진주하는 것은 무척 어려워보입니다. 결국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현 북한정권이든 새로운 북한정권이든 간에 한국과 매우 적극적으로 협력할 의지를 가져야만 한국입장에서 바람직한 통일시나리오가 나온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의지는 아마도 중국의 간섭조차 무릅쓸 정도로 강력해야 할 터인데, 이게 참 쉽지 않을 문제일 것 같습니다.

    다소 딴이야기가 되었습니다만 현 헌법의 영토규정은 통일문제를 놓고 이야기할때 군사력 사용에 의한 흡수통일 이외에 다른 모든 대안을 '근본적으로' 배제한다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남북은 각자의 존재를 불인정하는 헌법을 가진 채 교섭을 비롯한 국가간 행위를 해오긴 했습니다만, 이 둘을 합치는 문제만큼은 '유명무실한 규정'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다고 봅니다.
  • 만슈타인 2011/07/19 21:46 # 답글

    중소국가 입장에서 국제법은 상당한 실질적 규범력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영토조항의 경우엔 국제적으로 논리에서 마저 밀리면 중국을 압박하는데 뒤에 우방이 없으면 우리 혼자 중국 상대해야 할 문제 마저 있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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