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20 15:29

유사역사학이 낳은 유사문학 또는 고전능욕 WebLog



예전에 이 블로그에서 만엽가나(만요가나) 대해 소개한 바 있는데, 그 중에 만엽가나의 활용례로 만엽집(만요슈)의 단가 하나가 나와 있다.



垂乳根之
母我養蚕乃
眉隱
馬声蜂音石花蜘蛛荒鹿
異母二不相而
たらちねの
ははがかふこの
まよごもり
いぶせくもあるか
いもにあはずして
(다라치네노)
엄마가 치는 누에
고치에 숨듯
답답한 마음이여
님 만나지 못해서




최근에 인터넷에서 이 왜가(화가, 와카)에 대한 매우 '창의적인' 해석 하나를 발견하여 링크해본다.


고대 선조들의 성 교육서 만요수(si c.)(万葉集)

(클릭시 환독 주의 : 퍼와서 게시된 블로그이며, 원본글의 소재와 저자는 불명)


앞에 있는 신대문자와 가림토가 서로 병신력 배틀을 하는 듯한 이야기는 일단 그냥 넘어가자.



일본에서 이루어져온 정통적인 만요슈 해석(첫번째 것)은, 1) 만엽집의 일부 가요가 여전히 구전되고 있던 헤이안 시대에 이루어진 복원노력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며, 2) 만요시대로부터 이어내려오는 고대 일본의 언어와 한자 사용법에 기반하고, 3) 와카 자체의 양식적 특성 - 음수율이라던가, 위의 시에 사용된 '마쿠라코토바(枕詞)' 등 - 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반면 링크된 '창의적인' 해석은 이 3가지가 철저하게 결여되어 있다.

고대일본어와 고대한국어가 연관관계가 있다고는 해도, 현대어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만은 확실한 삼국시대 언어일진대, 적어도 중세 이후, 고려말~조선시대에 형성된 한국 한자 음훈과 현대 한국어에 기반해서, 굳이 그래야 할 필연성도 전혀 없는 기괴한 해석을 하는 건 그저 고전능욕이다. 일본 것이라면 뭐든지 똥통에 처박으면 시원하다고 느끼는 병적인 반일적 심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진국' 이미지가 투사된 게 아닌가 싶기도.

좀 짓궂은 의심을 해보자면,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다 소실되고 얼마 남지 않은 신라향가가 그나마 지금처럼 어느정도 가독하게 된 것도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만엽집 해석방법론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에 콤플렉스를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튼 결론은,

Pseudohistoria Delenda Est.








이하여담 :

내가 만엽집의 시들을 전부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만엽집에도 적나라한 사랑노래가 좀 있긴 하다. 예컨대,


(2542번)
若草乃
新手枕乎
巻始而
夜哉将間
二八十一不在國
若草(わかくさ)の
新(に)手枕(ひたまくら)を
まきそめて
夜(よ)をや隔(へだ)てむ
憎(にく)くあらなくに
(와카쿠사노)
새로운 팔베개를
베고났더니
어찌 밤을 멀리해
당신 싫지 않은데


대놓고 동침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사랑노래.


※ '와카쿠사노(若草の)'는 직역하면 '어린 풀의' 라는 뜻의 마쿠라코토바(枕詞)로서, 주로 새색시, 새신랑 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요즘은 마쿠라코토바를 아예 번역하지 않는듯하여 여기서도 그렇게 번역해보았다.

※ '二八十一'를 '니쿠쿠' 라고 읽는 건 구구단의 '구구(九九) 팔십일(八十一)'에서 나왔다. 만엽집에는 이렇게 황당하기 짝이 없는 표기가 많은데, 그래서 저런 유사역사학이 설치는 것이겠지만.

※ 좋아한다는 걸 '싫지 않다'는 말로 표현하는 건 한국어 표현법과 공통



(3366번)
麻可奈思美
佐祢尓和波由久
可麻久良能
美奈能瀬河泊尓
思保美都奈武賀
ま愛(かな)しみ
さ寝(ね)に吾(わ)は行く
鎌倉(かまくら)の
水無(みなの)瀬川(せがは)に
潮満つなむか
너무 그리워
같이 자러 간다네
가마쿠라의
미나노세가와에
물 밀지 않았을까


연인과 동침하러 가는 길에 강물이 불어날 걱정을 하는 노래


※ 水無瀬川는 미나세가와(지명)인 동시에 물이 없는 얕은 강이라는 뜻으로서 다음 구와 대조를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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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TheodoricTheGreat 2013/09/20 18:26 # 답글

    전 가능성을 아주 완전히 배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만엽집이 한국말로 풀리더라 다른 뜻으로 해석되더라 이런 이야기가 있지 않고 역사기록에도 두 나라에 통역이 필요없었다는 이야기도 남은 걸 보면 말입니다. 그거야 그럴 수도 있고 안그럴수도 있는 문제인데

    좌우간,

    근데 "이모"
    http://jpdic.naver.com/entry/jk/JK000000005444.nhn 異母(いも) 를 한국말 "님"의 뜻으로 쓰는 군요.

  • shaind 2013/09/20 19:18 #

    같은 문자가 한반도어로는 이렇게 풀리고 일본어로는 저렇게 풀리면 그거야말로 통역이 필요한 상황이겠죠.
  • 진냥 2013/09/20 19:35 # 답글

    항마력이 너무 필요해서 미처 다 읽지를 못했습니다...ㅠㅠ
    고전 작품을 그 작품 자체로 읽기 전에, 다른 모종의 목적으로 읽는 그런 행위는 참..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보는 사람으로는 참 눈 뜨고 못 봐주겠네요...
    전 이번에 국립중앙도서관 레이드를 가면서 [백인일수]를 재독할 겁니다!! [고킨와카슈]도 읽을 겁니다!!! 꺄 신나!!!
  • shaind 2013/09/20 20:20 #

    '감히 만요슈를 해석할 수 없다' 운운하는 걸 보면, 국풍암흑시대 이후 만엽집 해독의 역사 같은 건 들어보지도 못한 문외한이 쓴 글이겠지요.

    만엽집에 나오는 장가라던가 부정형가를 멋대로 해석하는 건 그렇다쳐도 저렇게 정형 단가를 원래의 형식적 요소 같은 것도 모르고 뒤죽박죽해놓은 게 특히 웃프다고 해야 할지.

    고금집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엽집의 단가들이 (읽기가 괴악해서 그렇지) 내용이 간단하고 소박한 면이 있어서 좋습니다.
  • Esperos 2013/09/22 12:59 # 답글

    니쿠쿠...미치겠군요. 좋게 말하면 '창의적인 해석'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랄지 같은 독법이죠 (____) 하긴 그러니까 만엽집이 씐 지 얼마 안 되어서 심지어 일본인들마저 '해석' 작업을 해야 했다고 이미 쓰시긴 했지만요.
  • shaind 2013/09/21 17:22 #

    니쿠쿠도 그렇고 맨 앞에 제시한 시의 4구('마성'이라고 쓰고 '이'라고 읽고, '봉음'이라고 쓰고 '부'라고 읽는)도 참 그렇죠.

    그래도 비교적 이르게 31자 정형시 음수율이 확립되어서 국풍암흑시대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후대를 위해서는 다행었습니다. 그런 것도 없었으면 해독이 한층 어려웠겠죠.
  • 2013/09/22 00: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haind 2013/09/22 00:31 #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110437 이 책 말씀이시군요.

    사실 이 책의 예전 판을 오래전에... 대략 중딩적에 읽은 기억은 아련하게 납니다. 나중에 만엽집에 대해 어느정도 제대로 알고 난 뒤에 다시 마주치고 나니 뜨악한 거죠.

    그건 그렇고 만엽집 같은 경우에 이미 헤이안 시대에 대부분의 단가의 독음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잘 확립되었는데 어째서 이런 엉터리가 '무너뜨린 걸로 이름을 얻는' 정도였을지 미스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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