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25 21:27

언어의 정원에 나온 두 수의 시에 대하여 보고 들은 것




요 근래 만엽집 이야기를 연달아서 한 김에 한번 더.






언어의 정원에는 만엽집을 출처로 하는 두 수의 와카 증답가가 나오는데 아래와 같다.



1. 증가 (만엽집 2513번) - 작중 유키노 유카리가 읊음

만요가나 표기
雷神 小動 刺雲 雨零耶 君将留

고증된 독법
鳴る神の / 少し響みて / さし曇り / 雨も降らぬか / 君を留めむ
(나루카미노 / 스코시토요미테 / 사시쿠모리 / 아메모후라누카 / 키미오토도메무)

해석
우레소리가 / 조금씩 울려오고 / 구름 흐리니 / 비도 오지 않을까 / 그대 붙잡으련만



2. 답가 (만엽집 2514번) - 작중 아키즈키 다카오가 답함

만요가나 표기
雷神 小動 雖不零 吾将留 妹留者

고증된 독법
鳴る神の / 少し響みて / 降らずとも / 吾は留まらむ / 妹し留めば 
(나루카미노 / 스코시토요미테 / 후라즈토모 / 와레하토마라무 / 이모시토도메바)

해석
우레소리가 / 조금씩 울려오고 / 비는 안 와도 / 나는 떠나지 않아 / 당신이 붙잡으면


(애니메이션의 두 사람은 위 시를 현대어에 가깝게 발음하고 있어 고증된 독법과는 살짝 다르다.)



증가는 소박하지만 날씨에 빗대어 석별의 정을 깊이가 있게 표현했는데, 답가는 그야말로 증가의 첫 두 구를 그대로 Ctrl+C,V했다. 솔직히 너무 성의없지 않은가 말이다 -_- 안 떠날 거라니 다행이지만서도.

그건 그렇고,

만엽집에는 이 시의 출처가 柿本 人麻呂歌集(시본 인마려가집)이며 後朝(후조, きぬぎぬ) 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건 하룻밤을 같이 보낸 남녀가 아침이 되어서 서로 헤어진 뒤에 정말 헤어지기 싫었고 아쉬웠다고 부둥부둥하는 편지를 보내는 시츄에이션이다. 아마 그날 아침에는 날씨가 흐리고 멀리서 천둥이 쳤겠지.

여자는 그 날씨에 빗대어 이렇게 애절한 증가를 보냈건만 남자가 이렇게 성의없이 답가를 쓴 꼬라지를 보건대 남자 쪽이 시재(詩才)가 없던가, 아니면 마음이 없었을지도. 여튼 안습.

하긴 시로 마음을 주고받던 시대에 모든 남자들이 시재가 뛰어나진 않았을 것이고 대부분은 그저그런 시였을 것이고, 더러는 버벅거리기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게 부끄럽게도 그냥 이렇게 문자로 남아버렸던 것일까.




Post Script : 엔하위키 언어의 정원 항목의 해당 시에 대한 내용이 좀 엉터리라서 고쳐놓았다.
(히라가나로 쓴 걸 가리켜 '만요가나'라고 씀.)


Post - Post Script : 맑은 날의 재회 장면에서 다카오의 표정이 뭔가 귀엽다......

덧글

  • 진냥 2013/09/26 00:07 # 답글

    고킨슈에 보면 천황이나 전상인이 근사한 경치를 보고 가인들에게 시 읊으라고 해서 읊은 시가 참 많더라고요... 자신 없으면 가만히나 있지 남 닦달하기는... 하지만 까라면 까야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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