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17 19:03

인터스텔라 봄






스포일러 있음.










우주포르노라는 좀 극단적인 평가도 듣고 있지만 이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닌 것 같다.

SF로서의 과학적 정확성은 논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논문 쓸 정도로) 정밀한 과학적 엄밀성이 추구되다가도, 다른 부분에서는 정말 어이없을정도로 나이브한 설정들이 넘쳐난다. 예컨대 분명 지구에서 쏘아올릴 땐 다단 우주로켓에 실려가던 우주선이, 나중에 가면 (마치 스타워즈에 나오는 우주비행체처럼) 지구급 중력을 가진 행성 표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떠올라서 궤도에 진입한다. 우주발사체의 발사총중량의 80% 이상이 연료이고 - 우주왕복선은 자기 몸체의 몇배나 되는 연료탱크에 얹혀서 부스터까지 달아야 궤도에 오른다 -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아는 사람이라면 실소를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건 알아도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없는데, 영화적 몰입의 방해요소이다.

후반으로 가면 정체불명의 외계 존재의 작용이 전면에 드러나면서 내용이 극도로 판타스틱해지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비판하고 싶지 않다. 사실 아서 C. 클라크 같은 이 분야의 본좌도 눈에 보이지 않는 불가해한 초과학적 존재들이 인간과 접촉하는 내용의 소설을 (두 시리즈나) 썼으니까 말이다.

내용이 판타스틱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영화가 주려고 하는 테마가 일반인의 기준으로도 지나치게 통속적인 것은 분명 문제다. 뭐, 하긴...... 이 영화의 '테마'가 포르노에 있어서의 '스토리'와 같은 것이라고 친다면 그런 점도 이해할만하긴 하겠지.



우주덕후들에게 어필할만한 부분도 분명 있는데, 영상 자체를 보면 뭔가 옛날영화스러운 grain이 느껴지는 정겨운 화면이다. 로켓 발사장면은 정말 나사 기록영상의 새턴로켓 발사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 아폴로 계획이 소련을 낚은 페이크라는 음모론이 작중 공식 학교교육과정에서 가르치는 정사(...)라는 설정같은 것도 우주덕후들이 피꺼솟 하면서 영화에 몰입하게 해주는 요소 중 하나다.

또한 영화 안에는 저 기념비적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영화(1968)를 본 사람이라면 '아, 이 장면이군' 할만한 장면이 몇개 있다. 예컨대 쿠퍼가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면서 절규하는 장면, 그리고 빨려들어간 다음 갑자기 외계 존재가 만든 고요한 가상 공간에 떨어지는 것이 그렇다. 또 작중에서 외계로 나가는 웜홀이 토성 주변에 뚫려있어서, 주인공들이 토성을 배경으로 워프를 하는 것은 분명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마주이다. 영화판에서는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소설 원작의 설정을 바꿔서 목성에서 바로 게이트웨이가 나타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풀이랄까. 만 박사가 수동으로 해치를 열고 우주선으로 진입하려다가 급 폭발해서 리타이어하는 장면은 HAL이 데이브를 죽이려던 장면의 오마주에 해당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TARS 계통의 로봇들은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디자인인데 기원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설마 모노리스는 아니겠지


사운드에 있어서도 좋은 이야기를 할 거리가 있긴 하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도 그렇지만, 그래비티(2013)에서는 우주가 주는 압도적인 침묵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서 또 화제로 되었는데, 이 영화도 그래비티만큼 적극적이진 않지만 그런 요소를 몇몇 장면에서 활용하고 있다. 또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작중 쿠퍼가 로밀리에게 이어폰을 건네며 우주공간을 배경으로 소나기가 내리는 숲의 ambient 사운드를 틀어주는 장면이 있는데, 솔직히 꽤 인상적이었다고 하겠다.




개인적인 느낌은, 재밌기도 재밌고, 고전명작 오마주도 참 고마운데, 이 기술로 그냥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리메이크해줬으면 내게는 더 좋았을지도.

객관적으로는, 나는 재밌긴 했지만 다른 사람도 - 심지어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도 - 재밌게 느낄지 심히 의문스러운 영화.




덧글

  • 계란소년 2014/11/17 19:09 # 답글

    전 오히려 재미는 느낄 거라고 보네요. 하지만 그 이상이라면 글쎄? 싶습니다.
  • 미사 2014/11/17 20:14 # 답글

    으아 마지막 문장이 대공감입니다. 놀란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이 기술력으로 스페이스 오딧세이 리메이크 해주먄 진짜 ㅠㅜ 눙물이!!
    아 처음 설정의 거슬리는 부분은, 마지막에 중력방정식 풀면서 중력문제를 해결했기에 처음처럼 거추장스러운 추진로켓이 필요없어진 건 아닐까요?
    근데 전 사실 그 중력방정식이란 게, 거기서 시간은 어찌되는건지가 궁금해지더라고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