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7 00:58

차익거래자 잡상노트

수도 이전하면 땅값이 내려가기나 하나?(누군가의친구)


흔히 물건(주로 부동산)이 쌀 때 샀다가 비쌀 때 파는 사람, 곧 차익거래자는 자산에 대한 투기행위자로 가장 비난받기 쉬운 입장에 처해 있다. 차익거래자에 대한 비난하는 감정은 대개 낡아빠진 고전경제학의 노동가치설, 또는 그보다 더 오래된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불로소득 혐오의 원리에 입각해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생각을 제 1원리(First Principle) 에서 연역적으로 반박할 생각은 없다. 그건 내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고. 다만 나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지적해보고자 한다.

상인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그런데 농부나 어떤 다른 기공이 그가 만든 물건을 장터로 가져갔는데, 그가 물건을 교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그 시각에 만나지 못한다면, 자기 일을 제쳐 놓고 장터에 우두커니 앉아 있어야 할까?"

"아니죠. 결코 그렇겐 안합니다. 그러나 이 필요에 착안해서 그들의 일을 맡아서 해줄 사람들이 나타날 겁니다. 이들은 잘 다스려지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대체로 몸이 약한 사람들과 무슨 다른 일을 하기에는 쓸모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장터에 머물러서, 무엇인가 팔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돈을 주고 물건을 받아두었다가, 그걸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고, 돈을 받게 되는 겁니다."

플라톤(조우현譯), "국가", (사)올제 2012 p.87



상인에 대한 플라톤의 이해는 매우 비하적인데, 이런 사실을 통해 상인에 대한 비하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뿌리깊은 것인 줄을 알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에 와서는 이런 사고방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매우 낡아빠진 것으로 취급된다.

그래서 아무도 상인을 불로소득자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러면 상인의 업의 본질은 무엇인가? 잘 따져보면 그것은 차익거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어떤 물건이 산지에서는 100원인데 소비지에서는 200원이라면, 상인은 그 물건을 산지에서 사서 소비지에서 팔 유인이 있다. 이는 상인 자신에게 좋은 일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시장에서 상인들의 집합적 행위로 인해 산지의 생산자들은 기존보다 더 높은 가격을 받고 소비지의 소비자들은 기존보다 더 낮은 가격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상품을 운송한다는 노동이 추가된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면 결국 상인의 일이란 것은 없으며, 그가 한 일은 운송업자, 택배업자의 일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볼 경우, 택배나 용달업자만 남기고 상인들을 모조리 처형하면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될까?

물론 아니다. 우리가 상인에게서 물건을 살 때는 단순한 운송에 들었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다.

거래에서 상인이 하는 일은 1) 공간적 거리로 인해 제한되었던 정보를 수집하여, 2) 원래는 만날 수 없었을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켜주는 것이고, 3) 여기에 부가적으로 물품의 매입에서 판매까지의 과정을 통해 발생하는 리스크를 일부분 지는 것이다. 예컨대 유통재고의 발생에 따른 리스크나 가격변동에 따른 리스크,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품질변동에 따른 리스크 같은 것 말이다. (한자동맹이 절인 청어의 품질을 보증했던 것처럼)

위와 같은 기능은 생산자와 소비자(그리고 운송업자)만 있을 때는 존재할 수 없었던 '시장'을 가능케 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다. 이렇게 해야만 누구든지 언제든지 스스로 필요한 곳, 필요한 시간에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상인은 차익을 따먹기 위해서 위의 여러 기능들을 수행해주는 것이다. 이를 요약해서 말하자면 '상인은 시장을 존재케 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대가로 차익을 따먹는다' 라고 해도 좋다.



그렇다면 다시 눈을 돌려 부동산 차익거래를 보자. 보통 물건(동산)을 거래하는 시장에서 판매자와 수요자 사이의 거리가 '공간적 거리'라면, 부동산이나 주식 시장에서 판매자와 수요자의 거리는 '시간적 거리'이다. 예컨대 차익거래자가 2006년에 아파트를 사고, 2013년에 팔아서 시세차익을 따먹으려고 할 때, 그는 2006년에 아파트를 판매한 사람과 2013년에 아파트를 구매할 사람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셈이다. 이는 상인이 공간적으로 떨어진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시켜주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사실 21세기 들어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공간적으로 떨어진 판매자와 구매자는 상인 없이 서로 직접 연결될 수도 있게 되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인이란 직업은 여전히 남아있다!), 아직도 과거와 미래의 판매자와 구매자를 직접 연결시킬 수 있는 기술은 없다.

그리고 리스크 측면에서 보면, 2006년과 2013년 사이에 아파트 가격이 올라갈지 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조건 오를 거라고 한다면 그건 우리나라가 여태껏 비정상이었던 거고...) 따라서 2006년에 아파트를 판 사람은 차익거래자에게 리스크를 떠넘긴 셈이다. 즉 상인이 미래에 발생할 차익을 대가로 받고 리스크를 대신 져준 것이다.

그리고 상인이 산지와 소비지의 가격 차이를 완화하듯이, 차익거래자는 미래와 과거 사이의 가격변동을 완화한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때는 차익거래자의 투기적 매입에 의해 가격 하락이 완화되고, 부동산 가격이 올라갈 때는 차익거래자의 차익 실현에 의해 매물이 나옴으로써 가격 상승이 완화된다. 이것은 상인이 산지에서 물건을 사서 소비지에서 팔기 시작하면 산지의 가격은 올라가고 소비지의 가격은 떨어지는 것과 그 핵심에 있어서 똑같은 것이다.

평범한 상인의 업무가 부동산이나 주식의 차익거래와 서로 다른 부분은 '공간적 거리'가 '시간적 거리'로 바뀐 것 뿐이다. 시간이 공간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닌 것은 물리학에서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을 더러 단순히 아무런 노동(부가가치를 생성하는 일) 없이 불로소득을 따먹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사실과 다를 뿐더러 아무 의미가 없다. 이런 주장이 비난하는 것은 우리 자본주의사회의 일상생활을 떠받치고 있는 상인의 "업의 본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훌륭한 상인의 일을 수행한 것이다.



우리가 부동산이나 주식 차익거래자를 유의미하게 비난할 수 있는 것은 그 활동이 (주로 '시장실패'라고 부르는 형태로) 공공의 이익에 해를 끼쳤을 때 뿐이다. 독과점에 의한 자의적 시장 조작, 어중이떠중이들의 시장 과열에 의한 거품의 형성과 붕괴, 정부개입에 뒤따르는 도덕적 해이 등등. 물론 이것 역시 부동산이나 유가증권 시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고, 모든 분야의 시장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비난이기도 하다. 차익을 얻는 것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덧글

  • 산마로 2016/01/17 02:55 # 삭제 답글

    너무 지당한 말씀이십니다만, 많은 유권자들은 그런 생각을 할 의지 자체가 없는 것 같더군요. 투기와 투자는 다른 것이라서 자신들은 투기만 비난한다고 굳게 믿고 있어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마녀사냥할 준비들이 되어 있죠.
  • 긁적 2016/01/17 11:19 # 답글

    두 시점 사이의 사람을 중재해준다는 이야기는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상품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한 2006년에 파는 사람과 2013년에 사는 사람 사이에는 어차피 양자를 중재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 즉 상인이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여 A라는 장소와 B라는 장소를 연계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사건입니다. 다르게 말해 그런 종류의 정보를 수집한 상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거죠. 그러나 차익거래의 경우는 어떠한 가정을 걸더라도 중간에 중개해주는 사람이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는 차익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의 고유한 기능은 아닙니다. 실사용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이건 차익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이건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이죠.

    결국 포스트에서 차익거래자의 순기능을 옹호하는 핵심주장은 차익거래자가 리스크 헷징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긍정적이고 저도 동의하긴 합니다만... 문제는 이것을 '순기능'이라고 부르려면 리스크 헷징기능을 실제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차익거래자가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할 때에 타당하다는 것이죠.

    무엇보다.... 차익거래자가 비난받는 이유를 본인이 맨 마지막에 서술하셨지요. 실제 현실에서 차익거래자의 행동은 대부분 시장의 과열에 편승해서 돈 좀 만지려는 사람의 행동에 가깝지 않나요? 매우 오랜 기간동안 정부에서 '부동산투기 과열대책'을 내놓은 것을 보면 본문에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시장을 교란시켰다고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주식거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식시장 자체야 시장에서 순기능을 하니까 딱히 비난받을 이유가 없지만 우리 주변의 개미 투자자들이 그런 거 생각하고 하는 거 보셨습니까...

    결국 제 관점에서 "차익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모든 사람이 시장에 악영향을 미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은 타당하지만, "현재 차익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의 대다수는 투기적인 성향을 띤다"라는 것 또하나 타당해 보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포스트의 지적이 타당하다 하더라도 크게 의미있는 지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 산마로 2016/01/17 12:08 # 삭제

    저 부동산이 2006년에 팔리지 않았을 경우,원 부동산 소유자가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 보시죠. 그리고 부동산이 2006년에 버려져 관리되지 않았을 경우, 2013년에 그 부동산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넘어갈 수 있을지 상상해 보시죠.
    그리고 '투기적 성향을 띤다'는 것이 '투자한다'와 어떻게 다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 소호 2016/01/18 03:24 # 삭제

    첫번째 문단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영 안가네요...
  • 긁적 2016/01/18 10:09 #

    산마로 //
    0. 난 산마로씨를 건전한 대화상대자로 인정하지 않아요. 지금 말하는 것도 '니가 생각을 해봤으면 내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따위로 나오는데 뭔.

    1. 그리고 심지어 주장하는 바도 틀렸는데 2006년 시점에서 구매자는 차익거래자만 있는게 아닙니다. 따라서 차익거래자가 없을 경우 정답은 """가격이 내려간다"""입니다. 차익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수요와 실사용을 목적으로 하는 수요 중 전자가 사라지니까 차익거래자가 없다는 말은 수요가 감소했다는 이야기가 됨. 시장의 수요가 전부 차익거래자에 의해 발생하는 줄 아는듯? 이 정도 생각도 안 돌아가는 양반이 말하는 싸가지는.
    그리고 차익거래자가 있다고 당신 이야기대로 재화의 손실이 안 일어남? 생각 좀 잘 해봐.

    추가답변 없음.

    소호 //
    음..;; 반사실가정인데..;; 현재 상정한 사례에서는 상인이 존재하고 차익거래자도 존재하지요. 상인이 상정하지 않는 경우와 차익거래자가 상정하지 않는 경우를 상정해서 각자의 역할을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입니다. 포스트에서는 상인이 공간적 거리에 의해 매매가 안 되는 경우를 이어주는 것과 차익거래자가 시간적 거리에 의해 매매가 안 되는 경우를 이어주는 것에서 유사점을 주장하지요.

    제 지적은 상인이 없는 경우를 상정할 때 거래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지만 차익거래자가 없는 경우를 상정했을 때에는 거래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차익거래자의 역할을 실제 상인에 빗댈 수 없다는 거지요.
  • 산마로 2016/01/18 11:33 # 삭제

    그건 동감이네. 나도 니가 알아듣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너같이 어리석은 자에게 현혹되는 자를 위해서 글을 쓴 거지.

    차익거래자가 없어서 팔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물었는데 왜 동문서답인지? 쉽게 얘기해서 부동산은 시점에 관계없이 항상 매매가능하다는 니 말은 헛소리라는 것임. 차익거래자가 없어도 매매가 늘 가능하다는 근거가 뭔데? 차익거래자가 없어도 가격이 낮아질 뿐 모든 경우에 거래가 성립 가능하다면 상인 없어도 가격이 낮아질 뿐 실수요자에 의한 직거래는 생길 수 있다는 것과 다를 바 없음.

    또한 차익거래자가 있으면 2006년과 2013년 사이의 손실은 최소화됨. 차익 거래를 바라는 소유자가 있는데 관리를 안해 손실이 생기도록 그대로 놔둘거란 말은 도대체 누구의 망상인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는 것이 사람들이 알아보기에 좋을 것 같으니 들어봄. 실수요자도 없어서 팔리지 않는 경우는 니 말과는 달리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 그러나 우선 니 말대로 가격이 충분히 낮아지면 실수요자도 있다고 치자. 2006년에 부동산 시장에 나온 매물이 차익거래자의 부재로 가격이 현저하게 낮아졌을 때 매도자가 그 가격으로 팔려고 할까? 그 가격이, 2006년과 2013년 사이의 매몰 비용을 고려해도 2013년에 기대되는 수익보다 더 낮아지게 되는 시점에서 매도자는 매매를 포기하게 됨. 다른 말로 하면 2013년까지 관리를 안하여 생기는 손실에 더해 가격 하락의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현재 가격이 너무 낮으면 거래가 성립되지 않음.

    공간적 거래와 비교하면, 시장에서 자기 생산물을 팔려는 사람이 그 생산물의 가격을 충분히 낮춰서, 심지어 실수요자의 교통 비용까지도 부담하면 거래가 성립하겠지만 실제로는 그 가격에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똑같음. 부동산의 차익 거래와 다를게 하나도 없지. 생산 비용, 투자비에 비해서 그 수익이 지나치게 낮으면 당장은 이미 생산된 재화에 한해서는 소량으로 거래가 될지 몰라도 추가 생산이나 투자가 사라져서 결국은 시장 자체가 소멸함. 부동산 역시 마찬가지여서 실수요자만이 참여할 수 있는 시장이 된다면 시장 규모는 형편없이 쪼그라들고 만성적인 공급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돼.

    사람한테는 상상력이란 게 있으니 제발 좀 발휘해 보자. 니가 1억 주고 지은 집을 100만원에 팔아야 한다면 너라면 팔겠냐?
  • 긁적 2016/01/18 13:16 #

    산마로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는데 공부를 하면 뭐하니. 불쌍한것.

    내가 알아듣기를 기대하지 않을 거면 앞으로 나한테 덧글 달지 않는 게 합리적인 판단 아니냐?
  • 산마로 2016/01/18 15:02 # 삭제

    제 댓글에서 가정된 상대방이 아니신 분들에게는 제 글의 문체가 좀 거북하실 것 같군요. 그래서 다시 존대로 돌아가서 댓글 토론의 최초 주장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다시 지적하겠습니다.

    1. 차익거래자는 시간적으로 떨어진 두 경제 주체를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공간적인 거리(사실 상인은 시간적인 거리도 연결합니다)를 연결시키는 중간 상인과 역할이 똑같습니다. 중간 상인을 금지하고 직거래만 허용하면 가격 하락과 시장 축소라는 결과를 낳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차익 거래를 금지하면 가격 하락으로 공급이 감소하여 시장이 축소되는 정확히 똑같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직거래만 허용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에, 부동산과 동산 시장 사이의 차이는 무의미합니다. 둘 다 중개인이 없을 때, 가격은 떨어지지만 시장 규모의 축소로 사회적 편익도 크게 감소합니다. 처음의 토론에서 내가 지적했듯이, 동산 시장에서 상인이 없으면 거래의 상당 부분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는 상대방도 인정하죠)처럼 부동산 시장에서도 차익 거래자가 없으면 거래의 상당 부분이 사라집니다. 가격이 하락하는 만큼 공급도 감소하기 때문이죠. 또 다른 말로 바꾸면, 상대방이 말하듯이 차익 거래자가 없으면 가격만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매매가 안 이루어지는 일도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2. '투기 성향이 있다'는 말과 '투자 의도가 있다'는 말을 구분할 수 있는 어떤 기준도 없습니다. 최초의 댓글을 쓴 자는 할 말이 없는지 그나마 억지 반론도 못하더군요.
  • 긁적 2016/01/18 19:16 #

    여러분. 산마로는 지금 제가 듣기 거북한 것은 신경을 안 쓰고 있습니다. 당연히 제 입장에서는 건전한 대화 상대자가 아니죠.

    shaind님의 주장에 대한 제 답변의 핵심은 존재양화사와 보편양화사의 차이에 있습니다. 산마로의 지적은 그저 제 주장을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발생하능게, 건전한 대화상대자가 아닌 사람과 대화를 지속헐 필요는 없으므로 답변도 없음을 밝힙니다.
  • 산마로 2016/01/19 23:03 # 삭제

    전혀 관계 없는 철학 용어를 쓴다고 동문서답이 제대로 된 답변이 되는 것은 아니죠. 답변을 못하고 도망치는군요. 긁적이란 자의 해악은 저런 식으로 철학 용어를 남용하면서 철학이란 학문 자체에 욕을 먹이고 존재 가치에 의문을 불러일으킨다는 겁니다. 제가 다른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 자의 철학 지식 과시는 철학의 진짜 모습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저런 자는 꼭 철학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천박함을 숨기기 위해서 아무 데에나 현학적인 용어들을 쓰고 싶어합니다. 철학이 원래 그런 게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일 뿐이죠.
  • shaind 2016/01/20 01:01 #

    중재가 아니라 중개입니다. 상인이 무슨 권능이 있어서 둘 사이를 '중재'할까요.

    상인은 실공급자와 실수요자 둘 사이를 '중개'하는 것입니다. 그건 부동산중개업자가 중개하는 것 같은 게 아니라, 팔 의사가 있음에도 실수요가 없어서 못 파는(그리고 그 역도 성립하는) 상황을 타개시켜주는 것입니다.

    "그가 물건을 교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그 시각에 만나지 못한다면, 자기 일을 제쳐 놓고 장터에 우두커니 앉아 있어야 할까?"(플라톤)

    실수요거래가 아예 없는 상황만이 문제가 아니라, 충분히 많지 않기만 해도 문제가 됩니다. 차익거래자가 있음으로 인해 시장참여자의 증가로 시장은 비로소 완전경쟁시장(그 전제 중 하나인 무수히 많은 대안적 거래를 가능케 함으로써)에 가까워지고 거래가가 경제학적으로 이상적인 '균형가격'일 확률을 높여줍니다.

    또 다른 장점은 가격이라는 시장의 '시그널'에 대한 수요공급의 반응성이 높아지는 것이죠. 보통 자기 집의 거주자라면, 혹은 실제 회사의 소유경영을 목적으로 하는 자라면 웬만큼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고서야 소중한 자기 집이나 자기 회사를 팔아넘기려고 하지 않겠지만 차익거래자라면 다릅니다. 그래서 원래라면 성격상 가격탄력성이 낮기 그지없었을 재화도 시장의 반응에 기민하게 반응해서 공급량/수요량이 조절될 수 있는 것이죠.

    이것이 차익거래자가 실수요자와 실공급자를 연결시켜준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시장이라는 기계는 차익거래자라는 기름을 쳐야 굴러갑니다.
  • 긁적 2016/01/20 11:09 #

    shaind // 오해가 있는데..;; 제 주장은 차익거래자에게 그런 종류의 순기능이 없다는 게 아닙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일단 '차익거래자'라는 말을 '매매차익을 목적으로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칩시다. 실제 시장에서는 동일한 사람이 차익과 실사용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용어 자체가 애매하기는 합니다만 논의 진행에 문제는 없겠죠.

    시장에 순기능을 하는 종류의 차익거래자가 있다. ( 제시하신 사례들 )
    시장에 역기능을 하는 종류의 차익거래자가 있다. ( 튤립파동, 서브프라임 )
    그러므로 임의의 사람이 차익거래자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 그 사람을 비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는 포스트 내용과 똑같습니다 -_-;;)

    기초적인 기호논리야 아실테니까 간단히 표현하면
    (∃x) 차익거래자(x) -> 시장 순기능(x)
    (∃x) 차익거래자(x) -> 시장 역기능(x)
    (~∀x) 차익거래자(x) -> 시장 순기능(x)
    (~∀x) 차익거래자(x) -> 시장 역기능(x)
    이렇게 되죠 (...) 초보적인 이야기입니다. 포스트 내용에 없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실제로 관찰하는 차익거래자들은 시장에 순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정부에서는 그 동안 부동산시장이 과열되지 않도록 정책을 펼쳐 왔다.
    누군가 차익거래자를 비난하는 이유는 그가 관찰한 차익거래자들이 대부분 시장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익거래자에 대한 그 사람의 비난에 문제는 없다.

    뭐랄까요. 차익거래를 통한 수익이 그 자체로 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한테는 크게 도움이 되겠지만 저는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거든요. ~_~ 그래서 포스트의 지적이 타당하다 하더라도 크게 의미는 없다고 한 것이죵.



    그리고 좀 덜 중요한 문제로 상인과 제시하신 부동산 차익거래자가 동일한 경제적 기능을 수행하느냐는 문제가 생기는데... 저는 여전히 부정적입니다. 차익거래자가 없을 시 가격을 낮추어도 거래가 안 이루어질 물건이면 그 물건을 구매할 차익거래자 역시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차익거래자도 자기 이익을 보고 물건을 사는 것인데 그렇게나 실수요가 없는 물건이면 나중에 실수요자에게 물건을 못 넘길 가능성이 크지요. 실제 부동산 시장에서 차익거래자가 있는데도 폐가는 생겨납니다.
    제시하신 예에서 '팔고 싶어도 수요가 없어서 못 파는' 상황에서는 차익거래자가 져야 하는 리스크도 높아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물건을 사겠다는 차익거래자가 있고 2013년에 그 물건을 팔아서 차익을 실현하는 것은 ""제시된 시나리오 안""에서 타당한 이야기이지 ""다른 생각가능한 시나리오""안에서도 타당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반면 상인의 예는 모든 시나리오 안에서 상인의 역할을 감당할 사람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요. 이런 측면에서 양자의 역할은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 긁적 2016/01/20 11:23 #

    산마로 // 어이구 멍청한놈. 너랑 나랑 같이 노는 게 너와 나 모두에게 손해라는 걸 그 둔한 머리에 친절하게 깨우쳐 줬는데도 알아먹지 못하냐. 다른 사람한테 빗대에서 나 들으라고 말하는 꼬라지 보면 개가 웃겠다.

    그래. 뭐. 나는 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지만 너는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니까. 별 수 없지. 내가 이제 너에 대한 자비심을 접고 진짜 합리적으로 행동해줄테니 마음껏 짖어라.
  • shaind 2016/01/21 01:30 #

    "차익거래를 통한 수익이 그 자체로 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한테는 크게 도움이 되겠지만 저는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거든요. ~_~"

    이 글은 기본적으로 본문 링크의 솔까역사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니 이건 패스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부정적 뉘앙스로서 '불로소득'이라는 단어가 엄존하고 있는데, 한 개인이 보지 못했다는 식의 anecdotal evidence가 의미가 있으려나요?

    그리고 언급하신 논리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등가적인 선택지로 놓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동등하지 않은 것을 동등하게 비교하는 것은 공평한 것이 아니죠.

    시장 그 자체가 차익거래자를 통해 작동하는데, 차익거래자의 시장에 대한 악영항을 차익거래의 정당성 문제 자체에 연결시키켜 판단하는 것은 칸트가 말한 '날으는 새가 공기저항을 제거하기 위해 공기에서 벗어나려는' 격이겠죠......비유의 본의와는 꽤 달라진 용례지만 말입니다.

    차익거래자는 시장 작동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반면, 차익거래자가 일으키는 문제들은 종속적이고 개별적인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우리에게 소중하지만 가끔씩 문제를 일으키는 문명세계의 대부분의 것들과 같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아, 물론 이것 역시 사람들이 차익거래자를 차익거래 그 자체로서 비난하는 것과, 시장에 대해 실제적인 악영향을 주는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 비난하는 것 중, 전자를 중점적으로 논할 때 통하는 논리임은 물론입니다. 애초에 그게 제가 말하려고 한 부분이었고, 논의의 실익의 문제는 확실하게 말하기 어렵군요.)



    그리고 시나리오 문제에 관해서라면,

    "차익거래자가 없을 시 가격을 낮추어도 거래가 안 이루어질 물건이면 그 물건을 구매할 차익거래자 역시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건 보통의 상인에게도 마찬가지죠. 안 팔릴 물건은 안 팔릴 물건입니다. 차익거래에서든, '보통의'상거래에서든요. 이 안 팔리는 물건을 s거리 떨어진 지점에 차익을 붙여 팔 수 있을 거라고 합리적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상인(행상인)이고, 이 물건을 t시간 떨어진 시점에 차익을 붙여 팔 수 있을 거라고 합리적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차익거래자죠. 그리고 이 합리적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그 기대가 깨지면 최선의 시나리오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도 둘 다 마찬가지구요.

    살 사람이 있다 없다의 문제를 통시적 / 공시적으로 맥락의 구분없이 사용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상인의 예에서, 산지의 생산자들에게 있어서 소비자란 한마디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는 2006년의 부동산 판매자에게 구매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구매자는 상인/차익거래자가 s거리/t시간만큼 떨어진 지점/시점에서 찾아내줬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인이 s거리를 이동하여 소비자에게 판매할 때까지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지는 것처럼(이게 상인의 이익의 정당성이죠) 차익거래자도 t시간을 경과여 구매자에게 판매할 때까지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집니다. 이게 차익의 정당성이라고 하지 못할 이유가 없죠.

    책임을 진다는 것은 상인의 기대가 잘못되어서 실제 구매자를 찾지 못하게 될 가능성을 포함하는 것이고, 또 차익거래자에게도 같습니다.

    이상이 상인의 예에서 생각가능한 대강의 시나리오인데, 보여진 것처럼 차익거래자에게도 대체로 대응되는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대개 상인의 예에서 생각가능한 대부분의 시나리오는 공간을 시간으로 치환시키면 차익거래자에게 대응됩니다.
  • 긁적 2016/01/21 11:12 #

    shaind //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제 대강 의견교환은 된 듯 하네요. 다만 제가 차익거래 자체에 악영향이 있다는 사실에서 차익거래를 부당하게 본 적은 없기 때문에 (...) 이 부분은 약간 오해하신 듯 합니다.
    사실 용어에도 문제가 있는데 '차익거래자'라는 중립적인 용어가 건전하기는 하나 본 논의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역할이 보다 큰 차익거래자를 '차익거래자'라고 부르고 부정적인 역할이 더 큰 사람을 '투기꾼'으로 부르는 게 논의를 깔끔하게 구성하는 데 적절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제 지적은 '사람들이 비난하는 건 투기꾼이지 차익거래자는 아님.'이 되겠고 shaind님의 지적은 '사람들이 투기꾼 때문에 차익거래자까지 도매금으로 넘겨서 까는데 이건 옳지 않음'이 되겠지요.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저는 딱히 불만은 없습니다. 투기꾼 때문에 차익거래 자체를 부당하게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런 현실인식에 기반할 때에 위 지적은 중요한 지적이 되겠지요. 그러나 제 관점 대로 그간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시장이나 주식거래가 사람들의 인식에 미친 악영향이 좀 크다고 보면 (경제적 영향 아닙니다..;;) 차익거래의 경제적 효과를 인지시키는 것 보다 차익거래의 부정적인 모습을 줄이는 게 더 효과적인 접근이 되겠지용.

    뭐.... 쓰고 나니 이런 생각도 좀 드는 게 우리나라에서 오랜 기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들은 하는데 부동산에 투자 가능한 자본이나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한정적이라 기분나쁜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저도 '저거 100% 오른다'라고 예측한 물건이 딱 두 개 있는데 둘 다 무지막지하게 오르기는 했지만 자본 조달이 불-_-가 해서 투자를 못 했거든요. 저야 별 불만은 없지만 아깝기는 한 것을 보면 같은 상황에 처하면 불만이 생길 사람이 있을 만도 하긴 하네요.

    가령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bestofbest&no=14358
    이런 종류의 인식이 현실에서 크게 떨어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_~. 요즘은 부동산이 저렇게 오르지 않으니 아니겠지만.


    이제 좀 덜 중요한 상인 문제로 넘어가면...
    일단 문제는...
    첫째. 생각 가능한 관련 시나리오의 종류가 매우 많습니다.
    둘째. 이 모든 관련 시나리오를 검토하기에는 문제의 중요도에 비해 필요한 노력이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시나리오'가 차익거래자에게 대응된다고 주장하시는 것은 저에게는 효과적이지 못한 듯합니다. 왜냐하면 부동산 시장에서는 차익거래와 실사용을 동시에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무지하게 많으니까요. 가령 저희 아버지께서도 지하철 개통을 생각하고 3~4년 전에 이 집을 사셨는데 실제로 년간 거주도 했습니다. 이 경우 실사용이 목적인 동시에 차익거래도 목적인데, 집에 자산의 대부분이 물려있는 한국인 특성 상 딱히 저희집의 경우가 특수사례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양반이 자기 자산의 대부분이 물리는 거래를 하는데 자산가치 상승/하락을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제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사례에서 사람들이 집을 구매할 때에는 차익거래를 달성하겠다는 목적과 그 집을 실사용하겠다는 목적이 혼재합니다. 그리고 차익 때문에 자기가 도저히 못 쓸만큼 문제가 있는 물건을 구매할 사람은 없죠. 살아야 하니까요. 이 때 '차익거래'가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상황은 그저 차익거래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상인의 예는 '그 사람이 없으면 절대로 안 일어날'일을 이야기하는 반면, 차익거래자의 예는 '그 사람이 없어도 웬만하면 일어날 법한' 일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간단히 말해 '공간적 거리'와 '시간적 거리'를 연결시킨다는 지적은 옳은데, 상인의 경우에는 그 공간적 거리를 연결시켜줄 사람이 '상인'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 이외에는 없으나 차익의 경우에는 '차익거래자'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 뿐 아니라 '실사용자'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도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수행할 실사용자가 존재하지 않는 시나리오는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보입니다.
  • 소시민A군 2016/01/17 15:43 # 답글

    '나는 집 한 채 구하기도 힘든데 저 분들은 자기가 살지 않을 집도 팍팍 사놓는구나 ;3;'하는 생각이 듭니다.
  • 소호 2016/01/18 03:30 # 삭제 답글

    말씀하신 상인의 역할은 차익거래라기보다는 시장조성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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