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22 08:46

지식의 착각 - 그리고 지구평평설 도서








1. 개인의 무지성

인간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얕은 깊이로 현상을 이해하고 있다.
→ 예 : 심리학 연구결과 - 사이클리스트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자전거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구조물 일부가 생략된 자전거 그림을 완성하라는 과제를 올바르게 수행하지 못했다. 일반인들은 수세식 변기를 포함한 대부분의 다른 일상적인 사물에 대한 이해조차도 대부분 지극히 피상적인 수준에 그친다.

원인 : 인간의 뇌 용량의 한계 - 서로 독립된 다양한 방법으로 측정된 뇌의 데이터 용량값들은 약 1기가바이트 내외로 수렴된다.
(고해상도 영상이나 음악을 조금만 모아도 몇 기가바이트를 훌쩍 넘는 점과 대조해볼 것.)

뇌 용량이 제한된 이유는 뇌의 물리적 한계 때문이 아니다. 예를 들어 과잉기억증후군(hyperthymesia) 환자들은 자기 경험에 대해 놀랄정도의 디테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e.g. 아무 날짜나 불러줘도 그 날이 무슨 요일이고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해내는 것이 가능하다. 뇌의 기능은 하드디스크처럼 의미가 있든 없든 모든 디테일이 살아있는 RAW데이터를 차곡차곡 모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뇌는 생존하기 위해 존재하며, 인간의 경우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데 특화되어있고, 이를 위해 받아들인 정보를 고도로 추상화('의미있는' 것들만 남기고 다른 것들은 버림)하는데, 추상화가 진행될수록 현상에 대한 이해는 피상적이게 된다.

2. 집단지성

개인의 무지를 어떻게 벌충하는가? 개인은 무지하나 공동체는 유식하다. 무지한 개인은 공동체 내의 해당 분야에 대해 디테일하게 알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한다. (이런 현상은 공학분야에서 특히 두드러질 것이다. 자동차와 같은 물건은 화학, 기계, 전자, 금속, 세라믹, 유체역학, 디자인 기타 다수 전문분야의 전문가들이 다른 전문가들의 지식에 의존해야 가능해지며, 개인이 그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심리학 실험에서, 지능이 있는 동물은 많으나 다른 인간의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은 인간에게 유니크하다. 즉, 인간의 진화과정 그 자체가 협업을 전제로 발전한 것이다.
사람들은 스토리로 만들어 기억하기 쉽다는 이유로 영웅들에게 주목하지만 실제로 역사적 과정들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협업의 결과이다.
예컨대 마틴 루터 킹을 민권운동의 영웅으로 기억하지만, 그의 업적은 68혁명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라던가 남부기독교지도자회의(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와 같은 단체의 기여 위에 서 있다. 과학사의 유명한 발견들도 과학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개인들의 고유한 업적이 아니라 학자들의 공동체의 작품이며 선대로부터의 누적적 발전에 기인한 것이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 동역학 체계에서 뉴턴역학체계로의 이행은 갈릴레이와 코페르니쿠스에 이르기까지 중세 내내의 누적적 발전에 기반하고 있다. )
이러한 "인지노동의 분담"은 일상에서부터 고도의 전문분야까지,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위키페디아와 같은 크라우드소싱의 성공을 비추어볼 때, 개인의 지식이 아닌 "지식공동체"의 지식을 효과적으로 모으고 활용할 방법을 찾아낸다면 그 활용도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또한 어떤 벤처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그 시초가 된 아이디어의 탁월성이 아니라 그 팀의 협업능력에 달려있다. (페이스북 같은 성공한 벤처기업에서 최초의 아이디어가 변형되지 않고 그대로 이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벤처 투자자들은 팀을 지원하지 아이디어를 지원하지 않는다" (p.274)

그러나 한편 이러한 의존 때문에, 사람들은 대개 현상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을 뿐이면서도 자신이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예컨대 심리학 실험에서, 가상의 과학적 발견에 대해 과학자들이 밝혀냈다고 서술한 기사보다, 그 과학적 발견을 DARPA의 과학자들이 했고 그 내용을 기밀에 부쳤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사람들은 그 가상의 과학적 발견에 대한 자신의 이해도를 더 낮게 평가했다.


3. 지식의 착각의 위험성

사례1 : 인터넷 검색 e.g. 웹MD(http://www.webmd.com) 정도로는 자신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필요한 전문적인 학습과 훈련을 대신할 수 없다. "의료관계자들은 정보를 찾아보고 온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눈에 띄게 많이 아는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다만 의료지식에 대한 자신감은 높았다. 그래서 이들은 전문가의 진단을 거부하거나 대안요법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p.182)

사례2 : 1995 로얄 마제스티 좌초 사고 - GPS항법에 전적으로 의지하던 승무원들이 GPS 신호상실 메세지를 무시한 채 GPS 정보에 따라 항해하다 모래톱에 좌초한 예. 사람들이 점점 기술(=타인의 지식으로 미리 만들어놓은 것)에 의지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가 되고 있음.


4. 과학에 대한 이해와 집단지성

일반인의 과학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도는 매우 낮다. 이는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하는데, 백신에 대한 무지가 특히 그러하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에 대한 대중적인 이해, 즉 과학지식을 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지하다는 것(소위 "결핍 모형")은 사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심리학 실험에 따르면, 부모들에게 백신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백신접종비율을 높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 실험군에서는 백신의 부작용을 믿는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즉 사람들의 과학에 대한 태도는 과학지식이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해있는 문화적 맥락("신념체계")에 의해 결정된다. 사람이 이러한 신념체계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공동체로부터의 이탈이므로 이는 매우 어렵다. "과학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려는 시도는 공동체의 합의를 바꾸거나 학습자를 다른 공동체와 연결하지 못하면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p.213)

"사람들은 복잡한 문제에 관해 한정된 지식을 가졌으며 구체적인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또 스스로 얼마나 아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지식공동체를 신념의 기반으로 삼는다. 그러다보면 열정적이고 극단적인 태도가 생겨서 변하기 어려워진다."(p.213)

따라서 과학교육은 단순한 과학적 사실들을 암기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며, (이는 교과서를 난잡하고 두툼하게 만들 뿐이다.) 오히려 과학자의 지식공동체에 속하게 하고 그 안에서 협업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정책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사람들은 어떤 정책의 모든 장단점이나 결과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어떤 정책을 자기가 속한 지식공동체의 신념(이글루스에서 유행하는 용어로는 "정치적 본능")에 비추어 지지하거나 반대한다.


5.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설명의 깊이

p.306 에는 인간의 설명 깊이 선호도에 관한 인상적인 실험이 수록되어 있다. 다음과 같은 3단계의 제품 설명문구가 제품 선호도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했다.

1) "밴드 안쪽에 기포가 있어서 베인 상처를 빨리 낫게 해준다"
2) "기포가 상처부위의 공기순환을 향상시켜서 세균을 죽인다. 그래서 베인 상처가 더 빨리 낫는다."
3) 기포로 인해 밴드 안쪽이 상처에서 떨어져 공기가 순환된다. 공기중의 산소가 세균의 대사작용을 방해해서 세균을 죽이고, 상처가 더 빨리 아물게 해준다.

1)보다 2)의 설명을 붙일 때 사람들이 제품을 더욱 좋아했으나, 3)에서는 오히려 제품에 대한 평가가 하락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정을 내릴 때 자세한 설명에 적대적이다. (반면 소수의 유형의 사람들은 설명이 조금이라도 더 디테일할 수록 선호하는 "설명에 열광하는 사람"유형에 속한다.)

광고회사들은 이 사실을 이미 잘 알기 때문에 광고에는 제품에 대한 유용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고, "이해편의상" 도입된 유사과학적 개념들로 넘쳐난다. 특히 화장품이나 다이어트약물 광고에서.

또한 사람들이 재무 문제에서 좀더 바람직한 결정을 내리게 하기 위해(e.g. 연금 가입 비율을 높이기 위해) 재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정보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정책은 결정의 부담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 진실은, 개인은 그런 결정을 할 만한 능력도, 그런 결정을 위한 디테일한 금융지식을 받아들일 능력도 없다.

사람들에게 정보를 단순히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사람들을 더 좋은 의사결정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 (c.f. 탈러,선스타인 著 "넛지") 예를 들어 사람들이 장기기증을 선택하게 하는 것보다, 장기기증을 디폴트로 하게 한 뒤 개인이 선택해서 장기기증을 제외하도록 하는 것이 낫다.

사람들을 올바른 결정으로 유도하는 방법론 :
1) 복잡성 줄이기
복잡한 법적, 재무적 결정에 있어서 사람들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의 기대치를 줄이고, 단순화된 법칙 (e.g. "수입의 15%를 저축하라" 같은) 들을 제시하는 것이 전체적으로는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
2) 적시 교육
교육내용에 대한 기억이 생생할 때 교육받은 것을 활용하게 할 것. 예컨대 고등학교에서 복리에 관한 복잡한 등비수열합 계산법을 가르치는 것은 개인의 건전한 재무적 결정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3) 이해를 확인할 것
사람은 실제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자신의 이해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자신의 무지를 모른다. 따라서 개인들은 선택을 하기 전에 그 분야에 대한 자신의 이해수준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


5. 지식의 착각의 장점

무지의 무지(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은 우리를 종종 재난으로 몰고가지만, 간혹 우리를 그 결과를 알았더라면 하지 못했을 과감한 도전으로 이끌기도 한다. (예컨대 1961년 미국인을 10년 내에 달로 보내겠다는 선언을 했을 당시, 케네디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얼마나 비용이 드는지, 미국 로켓과학이 어디까지 달성가능한지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같은 논리가 콜럼버스에도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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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평평설 : 과학지식에 대한 이해의 얕음에 관하여.



지금은 좀 썩은 떡밥이긴 하지만, 예전에 미국의 멍청함의 최신유행이었던 지구평평충(Flat Earther)들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국내에도 이에 동조하는 움직임(예컨대 이들은 이런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 있었고 그래서 잠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나는 예전부터 나사 달착률음모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도중, 달착륙음모론의 퇴화 버전으로 보이는 지구평평충들의 유튜브 비디오들을 접하고 이를 관찰하여왔다.

이들의 주장을 유튜브로 시청하던 도중, 나는 이들의 일부 주장이 중등교육 수준에서 얼마나 반박하기 곤란한지를 발견하고 흥미를 느꼈던 것이다.


[예1]

중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둘레측정 실험을 지구가 둥글다는 근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실험은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즉 하지에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의 태양고도가 다르다는 에라토스테네스의 관측결과는, 지구가 둥글다는 전제하에 지구둘레를 구하는 데 쓰일 수도 있고, 땅이 평평하다는 전제하에 태양이 떠있는 높이를 구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진실은, 지구가 둥글다는 학설은 에라토스테네스 이전 시대부터, 아리스토텔레스를 위시한 자연철학자들이 월식에서 생기는 지구의 그림자 관측, 그리고 항구에서 떠나는 배가 아래쪽부터 수면아래로 잠기는 것처럼 보인다는 등의 경험적 사실을 통해 제시하기 시작된 것이고, 그래서 에라토스테네스의 시대에 이르면 헬레니즘 세계 천문학계에서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이미 널리 받아들여진 사실이었으며, 에라토스테네스 역시 지구의 둥긂에 대한 지식을 전제로 해서 지구둘레 측정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가 둥글다는 과학적 지식을 주입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과학교육과정은 이러한 사실을 가르치지 않는다.



[예2]

지구평평론자들은 태양이 원반형 대지 위에 떠서 회전하면서 밤낮을 발생시킨다고 주장한다. (아래 그림)




그럴 경우 가능한 반박은, 태양이 멀어지면서 눈으로 보이는 크기가 작아질텐데 왜 그런 현상이 보이지 않느냐는 것이고, 이에 대해 지구평평론자들은 실제로 태양이 질 때 크기가 작아지는 것이 관찰된다고 주장한다. (아래 동영상)





환장할 것 같지만 이게 왜 틀렸는지를 정면으로 논파하기 위해서는 광학에 대한 디테일한 지식이 필요하다. 즉, 밝은 광원을 정면으로 볼 때 렌즈 내부에서 빛의 난반사와 산란에 의해 발생하는 플레어 현상 때문에 태양의 이미지 주변에 태양광이 퍼져서 보이고, 그래서 특히 광각으로 촬영된 영상에서는 태양이 지면서 크기가 작아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설명은 중등교육 레벨의 깔끔한 설명과는 거리가 멀다.


[예3]

지구평평론자들은 위의 [예1]에서 본 것처럼, 태양이 1억 5천만 킬로미터가 아닌, 비교적 가까운 거리(대략 수천킬로미터 정도)에 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대한 근거로, 이들은 다음과 같은 구름을 뚫고 들어오는 태양광선의 사진을 예시로 든다.




즉, 이러한 광선사진에서 빛의 방향을 추적해보면 비교적 낮은 고도에서 서로 합쳐지게 되는데, 이는 결국 지구평평론의 증거(좀더 구체적으로는 태양이 1억 5천만킬로미터 정도의 먼 거리에 있을 때만 성립되는 지구구형설의 근거들이 틀렸다는 증거)라는 주장이다. (태양이 1억 5천만킬로미터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태양광선은 위 사진에서 보듯이 방사상으로 퍼지지 않고 사실상 평행해야 할 것이며, 이것은 위의 [예1]에서 에라토스테네스의 계산법의 전제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 주장이 왜 틀렸는가?

실제로도 구름을 뚫고 오는 태양광선들은 평행하기 때문이다.


(구름을 뚫고 비치는 태양광선을 우주에서 촬영한 사진)

핵심은 원근법에 있다. 즉 위와 같이 원래는 평행한 광선들이, 사람이 땅 위에 서서 먼 곳에 있는 구름을 뚫고 오는 것을 볼 때는 원근법 효과에 의해 방사상으로 퍼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비교적 간단히 논파되는 주장이었지만, 중등교육의 과학과정에서든, 수학과정에서든, 원근법은 등장조차 안 하는 주제이며 오히려 미술시간(요즘 고등학교에 미술수업이 있긴 한가?)에 더 많이 다루는 주제이다.


[예4]

지구평평론자들은 우주에서 찍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진들은 모두 가짜, 컴퓨터 이미지이며, 나사의 음모라고 주장한다. 그 가장 주된 근거는 우주의 진공에서 로켓이 추진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가장 기초적인 형태는 다음과 같다. "로켓은 배기가스를 통해 로켓 뒤의 공기를 밀어내야 추진될 수 있다. 따라서 공기가 없는 진공상태에서 로켓은 앞으로 추진될 수 없다. "

이런 생각은 사실 널리 퍼진 오해이고, 뉴욕타임즈가 1920년에 고다드의 달착륙 이론을 조롱하면서 주장했을 정도로 깊은 오해이다. 이는 로켓의 배기가스는 자기자신을 밀어내는 반작용으로 로켓에 추진력을 가한다는 기본적인 역학이론으로 쉽게 반박된다. 또한 기체는 압력을 갖고 있고, 압력은 로켓엔진 내벽의 모든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한쪽 끝을 열어서 기체가 배출되면 반대편 끝에서 작용하는 압력이 로켓엔진을 기체 분출방향의 반대방향으로 밀어낸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다음과 같은 진일보한 음모론이다.

"우주의 진공 속에서 로켓엔진의 배기가스는 진공으로의 자유팽창(Free Expansion into Vacuum)을 한다. (이러한 자유팽창을 줄 팽창 Joule Expansion 이라고도 한다.) 진공에서는 압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기체는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말 그대로 "자유팽창"하며, "유용한 일"(Useful Work)을 하지 못한다(이는 진공으로 자유팽창하는 이상기체의 온도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실험적 사실로도 간접 증명할 수 있다). 즉 진공속으로 자유팽창하는 배기가스는 로켓을 추진시킨다는 유용한 일을 하지 못한다. "

위와 같은 잘못된 논리는 열역학에서 기체의 "압력"이라고 일컫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개념(기체에는 내적 압력과 외적 압력이 있고, 진공에서 압력이 없다고 하는 것은 외적 압력을 의미한다.)과, "기체가 하는 일"이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때, 그리고 무엇보다도 열역학에서 논하는 자유팽창의 기본 전제조건을 간과하기 때문에 성립된다.
(진공으로의 자유팽창 실험에서는, 기체가 든 용기는 처음부터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전제하기 때문에 기체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며, 이와 반대로 실제 로켓과 같이 기체가 든 용기가 스스로의 질량을 갖고 움직일 수 있다고 전제하면, 기체는 용기 밖으로 나가기 전에 용기의 관성에 대항해 유용한 일을 하게 되고, 심지어 그 결과로서 기체 분자의 운동에너지를 잃게, 다시말해 온도가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통상 중등 내지 고등교육과정상의 열역학에서 이러한 개념이나 전제조건은 쉽게 간과된다. 학부 수준의 열역학(quasi-equilibrium과 steady state만 다루는)에서는 이걸 신경 안써도 통상 문제를 풀고 학점을 받는 데 별로 지장이 없기 때문 (그리고 물리학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열역학의 응용학문분야에서는 더욱 신경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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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지구평평충들의 흥미로운 주장 가운데는 항공기의 자이로컴퍼스가 땅이 평평한 근거라는 주장, 오대호 건너편에서 원래 보이지 않았어야 할 수평선 너머의 도시의 풍경이 보이는 현상 등등이 있지만, 이미 지구평평충들을 충분히 장황히 설명한 것 같으니 이쯤 해 두자.

사실 지구평평충들은 음모론 중에서도 비교적 멍청한 축에 속하기 때문에(최근에 등장한 제트연료 음모론에 비하면 그나마 윗질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씀.) 비교적 쉽게 반박이 된다.

다만 이들의 주장을 접하면서, 지구의 둥긂이라는 겉보기에는 지극히 간단한 과학지식에관해서 조차도, 중등교육과정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지식이 얼마나 얕은지, 그리고 그런 간단해보이는 지식도 실제로는 얼마나 막대한 "지식공동체"를 배후에 갖고 있는지를 실제 체험할 수 있었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상이 최근에 내가 이 책을 인상적으로 읽은 이유이다.





덧글

  • 진냥 2018/09/22 18:38 # 답글

    '나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다'였던가요? 뉴턴의 말이 떠오릅니다.
  • 잡지식 2018/09/24 20:08 # 삭제 답글

    때로는 모르는게 약이군요
  • Dancer 2018/09/28 09:53 # 답글

    간단한 오류를 설명하기 위해 장대한 설명이 필요한 경우가 많죠

    사실 실수는 누구나 합니다. 그런데
    타당한 사고방식을 가진 경우에는 간단한 설명으로도 스스로 오류를 납득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사고의 공리자체가 오류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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